“저…선생님, 노래가 틀리셨잖아요”

  • 입력 2008년 1월 16일 21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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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배역을 맡기기 위한 배우를 뽑기 위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연 뮤지컬 ‘러브’. 사진 제공 에이콤인터내셔날
노인 배역을 맡기기 위한 배우를 뽑기 위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연 뮤지컬 ‘러브’. 사진 제공 에이콤인터내셔날
뮤지컬 '명성황후'를 만든 중견 연출가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요즘 생전 안 하던 일을 하고 있다.

중극장 뮤지컬 '러브'를 준비 중인 그는 처음으로 배우들의 식사까지 일일이 챙기고 있다. 뿐만 아니다. 연습실 곳곳에는 자양강장제, 배즙을 비롯한 각종 건강보조식품도 갖다놨고 혈압약과 안정제까지 준비해뒀다.

배우가 실수라도 할라치면 예전엔 무섭게 야단치던 그였지만 요즘은 "○○○ 선생님" 하며 공손한 어투로 정중히 '지적해 드린다'.

'러브' 출연진의 평균 나이는 62세. 요양원을 무대로 황혼기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에는 오디션을 통해 뽑은 진짜 노인들이 출연한다. 윤 대표는 "젊은 배우가 얼굴에 주름 그리고 머리 허옇게 분칠하고 나오는 어색한 장면을 없애고 보다 실감나게 노인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황혼 소재 공연들

최근 공연계에 두드러진 흐름 중 하나는 노년의 삶과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19일 막을 올리는 뮤지컬 '19 그리고 80'은 19세 청년과 80세 할머니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한 때 놀았던 할아버지와 연상의 욕쟁이 할머니가 황혼기의 사랑을 만들어가는 '늙은 부부 이야기'는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중이다.

인기 만화가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올 상반기 연극 제작에 들어간다. 이 만화는 폐지 줍는 할머니와 우유배달부 할아버지의 사랑을 가슴 뭉클하게 다룬 작품이다.

이렇게 노인 타깃 공연이 늘어난 이유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공연 시장이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의 주 관객층인 20대~30대 싱글 여성을 겨냥한 로맨틱 코미디는 이미 넘쳐나는데다 호객행위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관객을 유인하는 개그콘서트 류의 코미디와도 경쟁해야 한다.

이에 비해 중장년층을 겨냥한 공연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다. 가장 성공한 중장년층 타겟 연극으로 꼽히는 '늙은 부부 이야기'는 이제는 관객의 70% 이상이 50대 이상의 중년이 차지할 만큼 자리잡았다.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제작하는 트라이프로의 박정은 기획팀장은 "중장년 층 뿐만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에 식상한 젊은 관객들도 자신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노년의 삶을 그린 작품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족한 노인 배우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많지만 노인 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뮤지컬 시장이 젊은 여성 관객을 위한 로맨틱 코미디로 흘러가다보니 노년 배우들의 층이 얕기 때문이다. 대학로에서는 50~60대로 설정된 노인 역을 20~30대가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기를 모으고 있는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경우 주인공 트레이시의 어머니 에드나 역을 브로드웨이에서는 희끗한 중년의 남자 배우가 맡아 재미를 주지만 국내에서는 30대의 정준하 씨가 맡았다.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가 노인인 '러브'가 아예 노인들만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을 연 것도 이 때문. 윤 대표는 "국내 배우 명단을 놓고 모두 훑어봤지만 노인 역을 맡길 만한 배우가 거의 없었다. TV 등에서 활동 중인 중견 배우 중에는 연기는 되도 뮤지컬을 할 만큼 노래가 되는 분들이 너무 적더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는 "배우층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만큼 작품 선택의 폭도 줄어들고 공연 레퍼토리의 한계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뒤 "공연 문화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를 발굴해 배우 폭을 넓히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성운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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