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고수들이 말하는 설득의 王道

  • 입력 2007년 11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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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 기자
변영욱 기자
《설득의 계절이다. 젊은이들은 열정과 패기가 남달라 자신을 뽑지 않으면 대학이나 회사에 큰 손실이라고 면접관을 설득해야 한다. 회사원들은 상사에게 자신의 연봉이 많이 올라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한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나라를 잘 경영할 사람이란 점을 대중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이들뿐만 아니다. 학교 생활, 직장 생활, 가정 생활은 갈등과 설득의 연속이다. 설득을 향한 갈망을 느끼는 사람은 도처에 있다. 설득을 주제로 한 실용 서적이 꾸준히 팔리는 배경에는 이런 열망이 놓여있다. 설득은 단순히 말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버트 메르비안은 사람이 사람을 설득하는데 있어 말의 내용은 7%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목소리가 38%, 표정과 몸짓이 55%나 차지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의 달인’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을 통해 메르비안의 법칙이 얼마나 들어맞는지 알아봤다. 책에도 없는 달인들의 실전 노하우도 엿봤다.》

고수들 따라하면 면접시험 절반은 성공

○ 선거 입시 입사 연봉협상의 계절… ‘마음 사로잡기’ 완전정복의 길

광고업계에서 프레젠테이션의 1인자로 꼽히는 제일기획 광고 2본부 유정근 상무와 웰콤의 유제상 부사장, 펀드를 잘 팔기로 소문난 한국재무설계 오종윤 이사는 ‘설득의 달인’으로 불린다.

유 상무는 프레젠테이션을 잘해 제일기획에서 사상 두 번째로 ‘마스터’ 칭호를 받았다. 검찰청을 비롯한 외부 기관에서 프레젠테이션 강의 요청이 쇄도하는 인기 강사다.

유 부사장은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핵심을 찌르는 몇 마디로 고객을 설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 이사는 인생설계를 판다. 고객의 자산과 부채 상황을 진단하고 삶의 굽이굽이마다 필요한 자금을 예상해 재무설계를 해 주는 게 그의 일이다. 지난해 1월 회사를 세운 그가 관리하는 자금은 펀드만 60억 원, 보험도 60억 원 정도 된다.

이들의 목소리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음성전문 예송이비인후과에서 이들의 목소리 녹음 테이프를 분석했다.

설득력 있는 목소리는 3가지를 갖춰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우선 표준어를 쓰면서 음폭이 커야 의미가 잘 전달된다. 또 중저음이어야 듣는 이에게 안정감을 주며, 화음이 적절히 섞여야 신뢰감을 준다는 것이다.

세 사람 모두 최저 주파수와 최대 주파수의 변화 폭이 커 말소리가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일반인의 음폭 변화는 평균 120Hz인데 유 부사장과 오 이사는 음폭 변화가 250∼270Hz로 컸다. 유 상무는 313Hz나 됐다. 통상 음폭 변화가 300Hz 이상이면 사투리를 쓰거나 특정 단어를 너무 강조하려는 느낌이 들어 설득력을 해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목소리 높이를 음계로 표현하면 남성은 ‘도’나 ‘레’, 여성은 ‘미’나 ‘파’ 높이일 때 듣는 사람이 안정감을 느낀다. 유 부사장은 평균 ‘레’음을 내서 가장 안정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오 이사는 ‘솔’ 음을 냈다. 이는 보통 여성보다 높은 수준으로 세일즈에 적당한 음성이다. 유 상무는 평균 ‘파’음으로 높았지만 성대에 무리가 가지 않게 편안한 발음을 하는 편이었다.

예송이비인후과 김형태 원장은 “세 사람 다 남성으로서는 음이 높은 편이었고 목에 힘을 주며 발음하는 경향이 있는데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세일즈를 하는 직업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며 “높은 목소리는 시선을 끄는 효과는 있지만 안정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잡음이 없고 성악가처럼 잘 울리는 목소리가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지만 세 사람 다 잘 울리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김 원장은 “목소리를 낼 때 후두에서만 50개, 몸 전체에서 400개의 근육이 작동하는데 이 근육을 풀어 줘야 좋은 목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입 안을 최대한 벌리고 목에 힘을 푼 상태로 입 안과 이마를 울리는 듯이 ‘우’ 소리를 내면 후두 근육이 풀어지고 목소리를 좋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글=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 실전 노하우와 숨은 원리

이처럼 목소리만으론 세 사람이 설득에 능한 장점을 지녔다고 판단하기 힘들었다. 목소리를 넘어서는 실전 노하우는 무엇일까.

유 부사장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능력을 꼽았다.

그는 2000년 ‘세상을 다 가져라’는 광고카피로 유명했던 KTF의 ‘Na’ 광고를 만들었다. 촌스러운 체육복 차림의 아들이 길거리에서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라고 물으면 쓰러져 가는 주택의 2층 창문에서 러닝셔츠 바람의 아버지가 콧물을 흘리며 “나도 몰라.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라고 하던 그 광고.

지금 생각해봐도 대화의 앞뒤가 맞지 않고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촌티 나는 광고를 KTF 임원들에게 선보일 때 유 부사장은 진땀을 뺐다. 기획 단계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실제 광고가 훨씬 더 독특했기에 보수적인 공기업의 특성상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 부사장은 선수를 쳤다.

“최근 인기 있는 대니 보일 감독의 ‘트레인 스포팅’이라는 영화를 봤다. ‘광고쟁이’로 젊은층의 취향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나조차 끝까지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젊은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 볼 광고도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사전조사 결과 10, 20대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20세쯤의 마음으로 돌아가 봐주길 바란다.”

15초, 1분 두 가지 버전의 광고 상영이 끝나고 침묵이 흘렀다. 유 부사장에게는 1시간과도 같았던 침묵을 깨고 나온 질문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습니까”라는 반문이었다. 이후 이 광고는 전파를 탔고 히트를 쳤다.

건국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프리젠터 자신이 광고주와 같은 세대라는 공감대를 일단 형성한 뒤 ‘광고가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방주사를 놓은 전략이 적절했다”며 “대화를 할 때 ‘아하’ ‘정말 그렇구나’처럼 추임새를 적절히 넣어서 공감대를 형성하면 사회적 관계를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이사는 질문을 설득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는 고객의 소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소개받은 사람은 대체로 반신반의하면서 나오게 되고 때론 ‘귀찮지만 만나는 보자’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큰둥한 상대를 만났을 때 오 이사는 자주 질문한다.

“몇 살까지 사실 것 같으세요?” “혹시 제가 무례한가요?” “왜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선진국처럼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세요?”

질문은 상대방을 대화에 집중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답을 통해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질문에도 요령이 있다. 예를 들어 노총각 노처녀에게 “언제 결혼하니”처럼 답변을 꺼리게 만드는 질문,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보기 때문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밥은 먹었니?”와 같은 상투적 질문은 피해야 한다. 의견을 구하는 방식으로, 공감하는 자세로,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유 상무는 침묵을 활용한다. 중요한 말을 할 때는 청중 앞에서 10초간 말을 의도적으로 끊거나 화면을 먹통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면 연설자 말의 일정한 리듬 때문에 졸던 사람도 화들짝 잠에서 깬다. 어디선가는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발표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도 침묵을 적절히 활용한다.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4, 5초간 침묵해 청중의 기대감을 높인다.

인간은 침묵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상황을 환기하는데 적절하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음식에 참깨를 올리듯 아주 가끔 써야 제맛이다.

유 상무는 청중 가운데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는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그와 눈을 계속 맞추려고 노력한다. 중요 의사결정권자가 한 명이라면 그에게 집중해서, 여러 사람이라면 적절히 안배해서 눈을 맞춘다.

말할 때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건 중요하다. 광고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교육업체 C&A 엑스퍼트 김경태 원장은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해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쳐야 ‘내가 지금 당신에게 말을 하고 있다’ ‘진심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며 “특히 결정권을 가진 중요한 인물과는 눈을 자주 마주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상계백병원 정신과 이동우 교수는 “누구나 눈을 자주 마주치게 되면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소위 ‘작업’을 잘 거는 사람들은 ‘아이 콘택트(eye contact)’에 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 활용하면 좋은 상황별 설득요령

실제 내가 남을 설득해야 할 상황이 됐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입사 지원자는 면접을 앞두고 보통 예상 질문과 답을 외우게 된다. 하지만 ‘외운 정답’을 읊으려 하면 말이 빨라지고 눈을 치켜뜨게 된다. 음정이나 표정이 이상해지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단박에 표시가 난다. 핵심 단어와 논리만 기억해두는 게 좋다.

면접위원이 흔히 들어본 내용보다 반 발 정도 더 나간 대답이 효과적이다. 실제 한 대기업의 임원이 입사 면접에서 학교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은 지원자에게 왜 성적이 나쁜지 물었다. 그는 “학과 공부보다 사회생활에 대비해 서클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평범한 대답에 이어 “솔직히 말해서 면접위원님, 공부를 잘했건 못했건 회사에 들어오면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배우는 건 정말 자신 있습니다”라고 다소 공격적인 답변을 했다. 좋은 평가가 뒤따랐다.

너무 말을 잘 해도 신뢰도가 떨어진다. 최근 면접위원으로 참가한 삼성중공업 김부경 팀장은 “긴장해야 할 상황에서 적당히 긴장하고 천천히 말을 해야 신뢰감이 높아진다”며 “지나치게 번지르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에 대해선 면접관들이 공통적으로 좋지 않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연봉협상에서는 자신의 ‘기여도’를 중요한 항목으로 뽑는 게 좋다. 야구경기에서 연간 5, 6승을 건지는 적당히 잘하는 투수보다 공 10개 안팎으로 위기상황에서 팀을 구할 수 있는 ‘원 포인트 릴리프 투수’가 각광받는 것과 같다. 직장 내에서 ‘에이스’가 될 수 없다면 팀이 잘 굴러가도록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설득의 포인트로 내세우면 좋다.

대중을 설득하려는 사람들은 청중과의 감정선을 없애기 위해 연설대를 없애는 게 좋다. 스티브 잡스가 무대 위에서 대형 화면을 펼쳐놓고 연설대 없이 말을 하는 건 청중과 동질감을 느끼기 위한 장치다.

이 모든 요령보다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당장 겉만 포장해 물건이나 자신을 팔기 위한 설득, 5년 내내 욕을 먹더라도 이 순간 당선되기 위한 설득이라면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현 교수는 “설득은 곧 내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고, 책임(responsibility)은 반응(response)하는 능력(ability)”이라며 “‘자동차 판매왕’들은 많이 깎아줘서가 아니라 ‘먹튀(한 판 먹고 튀기)’하지 않고 고객과 끝까지 함께 가기 때문에 실적이 좋다”고 말했다.

이 순간 당신은 ‘먹튀’할 것인가 책임질 것인가.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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