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프랑스의 언론 자유 관련 사건

  • 입력 2007년 7월 30일 02시 58분


《올해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언론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인 판결과 사건이 있었다. 독일에서는 2월 1966년 ‘슈피겔 사건’처럼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제동을 건 ‘치체로 사건’ 결정이 내려졌다. 프랑스에서는 5월 수사판사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음해사건과 관련해 한 주간지를 압수수색하려다 실패했다. 두 사건 모두 취재원 보호 및 공권력의 간섭 없는 정보 전달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임을 보여 주는 사례로 꼽힌다.》

▽ 독일 치체로 사건=올해 2월 독일에서는 언론사 압수수색 및 취재원 보호와 관련해 1966년 ‘슈피겔 사건’ 결정에 못지않은 획기적인 판결이 나왔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월 27일 월간 치체로 압수수색 사건에 대해 7 대 1의 압도적 찬성으로 “언론사 기자에 의한 정부기밀의 단순한 공개는 압수수색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결정했다.

이 사건은 독일 수사당국이 2005년 9월 이라크 내 알 카에다 지도자 알 자르카위를 다룬 기사에 독일 연방수사국(BKA)의 기밀서류가 인용됐다는 이유로 정치잡지 치체로의 편집실과 브루노 시라 기자의 집을 수색한 데서 비롯됐다. 수색 과정에서 문제의 기밀서류가 실제로 발견돼 시라 기자는 공무상 기밀누설 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치체로의 볼프람 바이메르 편집국장은 2006년 11월 압수수색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밝힌 결정 요지는 다음과 같다.

“치체로 편집실에 대한 수색과 그곳에서 발견된 문서의 압수는 언론 자유에 대한 신문사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다. 편집실 수색은 편집 작업에 대한 침해가 동시에 이뤄지는,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다. 수사당국은 (편집실 압수수색으로) 편집 원(原)자료에 접근할 가능성을 열어 놓음에 따라 언론자유에 대한 기본권에 의해 보장된 편집 작업의 비밀과 취재원과의 신뢰 관계를 침해했다. 그 침해는 헌법적으로 정당화되지도 못했다. 하급법원은 압수수색을 정당화하는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헌법상 보장된 취재원 보호(Informantenschutz)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기자에 의한 정부기밀의 단순한 공개는 기밀누설 방조 혐의를 받는 기자에 대한 압수수색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비밀 소지자가 기자에게 정보를 넘기는 순간 이미 기밀누설 행위는 끝났다. 이에 이어지는 기자의 공개 행위에서 방조 행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범죄행위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취재원을 찾는 것이 목적인 한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헌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그러한 압수수색은 헌법적으로 보장된 취재원 보호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도 큰 논란이 됐다. 자유민주당(FDP) 등 야당 의원들이 언론자유 침해를 문제 삼아 연방의회의 특별조사를 요구했다.

치체로 사무실 수색 시도 직후인 2005년 11월 연방의회 내무위원회 특별회의에 비공개로 불려나온 당시 오토 실리 내무장관은 “치체로에 대한 압수수색은 균형을 잃은 것”이라고 시인했다.

▽ 프랑스 카나르 앙셰네 사건= 프랑스에서는 전직 대통령과 총리가 개입한 권력형 음해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수사판사가 5월 주간지 ‘카나르 앙셰네’의 편집실을 압수수색하려다 실패했다.

토마 카쉬토 수사판사는 카나르 앙셰네 편집실에 진입하려다 잡지사 측이 열쇠를 제공하지 않자 열쇠공까지 불러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반발에 밀려 약 2시간 뒤 압수수색을 포기했고 이후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프랑스 수사판사는 4월 외교부를 상대로 압수수색 명령을 내렸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2005년 일간 르 파리지앵과 일간 레키프 등 언론사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이런 수사판사가 카나르 앙셰네의 압수수색을 실시하지 못한 것은 프랑스 언론사(史)의 큰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카쉬토 수사판사가 수색의 이유로 든 것은 이 잡지가 지난해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개설한 것으로 추측되는 계좌가 일본에 있다’고 보도한 데 따라 이 기사에서 인용된 정보요원 ‘필리프 롱도’의 비밀보고서를 찾겠다는 것.

룩셈부르크 클리어스트림 은행의 정치인 비밀계좌 수사에서 시작돼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 음해사건 수사로 전개된 이 사건으로 도미니크 드빌팽 전 총리는 27일 피의자 조사를 받고 20만 유로의 소송보증금 지불 및 시라크 전 대통령과의 접촉금지 명령을 받았다.

최고 권력자들이 관련된 사건이지만 카나르 앙셰네의 클로드 앙젤리 편집국장은 당시 압수수색을 거부하며 “우리가 만약 그 서류를 갖고 있었어도 (수사판사가 못 찾게) 먹어 치워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나르 앙셰네 측 변호인 장폴 레비 씨도 공권력의 간섭없이 (without interference by public authority) 정보를 얻고 전할 자유를 규정한 유럽인권협약 10조를 들면서 “수사판사가 법에 따라 수색할 권리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유럽인권협약과 배치되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유럽인권협약에 규정된 ‘공권력의 간섭 없이’ 정보를 얻고 전할 자유만큼 구체적이지 않다. 헌법에 부속된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사상과 의견 교환의 자유를 언급할 뿐이다.

프랑스처럼 협약에 가입한 회원국의 국민은 협약에 규정된 인권을 자기 나라 정부가 침해했을 경우 유럽인권법정에 제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카나르 앙셰네 사건과 관련해 “언론 자유 제한은 ‘상황의 긴급성’이 인정될 때만 가능한 것이며 일상적 범죄수사와 관련해서는 허용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美연방법 ‘언론 압수수색 불가’ 명문화▼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언론사와 기자에 대해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법적 요건과 범위는 어떻게 정립돼야 할 것인가.

미국의 경우 취재 보도와 관련해 언론사나 기자에 대해 수사기관이 압수 수색을 하는 것을 제한하는 입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언론사나 기자가 불법 행위에 직접 연루된 피의자이거나 국가안보 및 개인의 생명과 관련되는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수사기관의 언론사 압수수색은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사의 출처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하려는 목적의 압수수색은 사실상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것과 같기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의 본질적인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1987년 취재원 보호를 위한 기자의 진술거부권과 편집공간에 대한 압수수색 금지 조항이 담긴 언론기본법이 폐지된 뒤 언론사 압수수색과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 규정이 전혀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정립된 대법원 판례도 아직 없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2003년 언론의 보도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이나 수사를 목적으로 언론인이 갖고 있는 취재자료를 압수수색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언론에 대한 압수수색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1969년과 1978년 미 연방대법원은 취재원에 대한 증언거부권과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 제한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각각 내렸다. 이들 판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1980년 제정된 연방법 중 사생활보호법(Privacy Protection Act)은 ‘기자의 저작물과 기자가 소유한 문서에 대해서는 국가안전보장과 관련한 사항, 아동 음란물, 기자 자신의 범죄와 관련된 증거, 생명·신체의 중대한 위험을 피하기 위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영장이 제시되더라도 압수나 수색을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미국 32개 주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패법(Shield Law)은 주마다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언론인이 대배심에서 증언을 거부할 권리, 정보 제공자를 취재원으로서 보호할 권리, 취재원 보호를 약속하고 받은 정보를 보호할 권리 등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승선 목원대 광고홍보언론학과 교수는 “취재원 보호가 갖는 헌법적 가치와 한국 사회에서 언론이 가지는 역할과 위상을 고려할 때 관련법을 차차 개정해 취재원 보호 조항을 제정하는 등 단계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확립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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