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日本의 속살, 온천료칸<7·끝>오타루 료테이 구라무레

  • 입력 2007년 7월 13일 03시 07분


코멘트
《일본의 료칸은 독특하다.

‘의식주’가 모두 제공된다. 숙박이라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객실만 주어지거나 또는 ‘객실+식사’가 전부.

그런데 료칸은 다르다. 주(住)와 식(食)은 물론 ‘의’(依)까지 제공한다.

그중 하나가 유카타(浴衣)다.

유카타는 얇은 면소재로 지은 홑겹의 일본 전통 가운. 료칸 안에서는 이것이 평상복이라는 사실이 독특하다. 식당은 물론 정원 산책까지도 가능한.

전통온천마을에서는 유카타 차림으로 료칸 골목을 누벼도 무방하다.

아침식사는 ‘쓰쿠다니’라고 해서 비교적 상차림이 간단(작은 생선과 간장조림 반찬 등)하다.

그러나 저녁식사는 다르다. 가이세키(會席) 요리라고 해서 함께 투숙한 일행 여러 사람이 다다미에 앉아 저마다 독상에 나카이 상(여관도우미)이 일일이 날라 주는 산해진미의 갖은 요리를맛보며 함께 즐기는 독특한 연찬회 형태의 식사가 이어진다. 가이세키 요리는 로텐부로와 더불어 료칸의 품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그런데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

오늘 소개할 오타루 료테이 ‘구라무레’(홋카이도 오타루 시)는

이런 전통 료칸의 ABC를 완벽하게 뛰어 넘은 퓨전 료칸이다.

그래서 업종도 ‘료칸(旅館)’ 대신 ‘료테이(旅亭·‘여관旅館+요정料亭’의 합성어)’라고 붙였다. 일본에서는 ‘와모던(和Modern)풍’이라고 부르는 퓨전 료칸의 대표선수라 할 만하다.》


촬영: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19세기 중반. 홋카이도 개척이 시작되자 야마가타 현 등 혼슈의 선주들이 선단을 이끌고 오타루(小樽) 항에 몰려들었다. 당시 바다에 지천이던 청어를 잡기 위해서다. 그 무진장의 청어가 선주들을 돈방석에 앉혔다. 돈 냄새가 멀리 도쿄까지 풍겨나간 모양이다. 이번에는 앞 다퉈 도쿄의 은행들이 오타루 항에 몰려왔다.

그 즈음 홋카이도 철도 부설 뉴스가 발표됐다. 1880년. 미지의 땅 홋카이도에서 첫 기적소리가 울렸다. 삿포로와 데미야를 잇는 데미야센 철도(오타루 시내를 관통, 현재는 폐선)다. 이시카리 지방(삿포로 북쪽)에서 채굴한 석탄의 수송로였던 이 철도. 석탄은 오타루 항에서 선적돼 혼슈로 보내졌다.

이번에는 석탄이 쌓이기 시작한 오타루. 청어가 바다의 노다지였다면 석탄은 육지의 노다지. 쌓인 석탄만큼 돈도 쌓였다. 18세기 말∼19세기 초 홋카이도 개척기에 오타루가 ‘일본 북쪽의 월스트리트’로 불린 이유다. 중앙발권은행인 일본은행(한국은행 격)이 오타루에 지점을 개설(1906년)했다는 사실이 그런 번영의 역사를 웅변한다.

‘오타루 료테이 구라무레’를 찾아가는 길. ‘에어포트 래피드’라는 쾌속열차가 삿포로와 오타루를 잇는 철도 34km 구간을 달렸다. 신치도세 국제공항과 오타루를 오가는 이 열차로 삿포로에서 오타루칫코(小樽港) 역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4분. 오타루칫코 역에서 구라무레까지는 택시로 5분 걸렸다.

택시로 도착한 곳은 작은 강이 흐르는 깊지 않은 계곡의 산자락 동네. 이 강은 아사리카와(朝里川)로 강을 낀 계곡에 자리 잡은 아사리카와 온천. 오타루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온천마을이다.

구라무레. 한자어로는 ‘장군(藏群)’이라고 쓴다. 장(藏)이라면 ‘창고’. 창고라면 오타루, 아니 요코하마 하코다테 등과 같은 옛 무역항의 상징이다. 오타루의 창고는 오타루를 돈더미에 올려놓은 청어잡이의 유산이다. 쉬 상하는 청어는 예서 통조림으로 가공됐다.

지금은 레스토랑 등으로 이용되는 생선창고. 그 창고는 운하를 끼고 있다. 배로 생선을 나르던 수로다. 그때 판 이 운하. 100년 후인 지금은 오타루의 랜드마크다. 운하를 끼고 늘어선 십수 채의 창고. 구라무레란 바로 이 ‘창고의 집합’을 말한다.

오타루 료테이 구라무레는 출입구부터 특이했다. 무디고 둔탁한 철문이다. 긴 복도의 실내는 어두웠다. 통로 한편의 유리창으로 들어온 자연광이 적당히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유리창 위치가 흥미롭다. 벽의 바닥 쪽, 아래다. 한겨울 대지를 덮는 하얀 눈이 잘 보이라고. 너무도 모던한 건축, 상식을 거부한 인테리어. 모든 것이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도전적인 이곳. 나를 맞아 준 이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트렌디한 검은색 정장 슈트 차림의 30대 남자. 인사 정도는 한국어로 할 줄 아는 사나다 도시유키 씨다. 명함의 직함은 ‘오카미’도 ‘지배인’도 아닌 ‘주인’. 먼저 구라무레라고 이름붙인 이유부터 물었다. “언덕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창고 모양 건물 여러 채를 이어 붙인 형태거든요.” 오타루의 역사성을 담은 건축이라는 설명이었다.

특이한 인테리어에 대한 그의 설명도 의미심장했다. “동양도, 서양도, 그렇다고 일본풍도 아니지요. 문화의 차이만 없앤다면 그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벽도 허물어진다고 봅니다. 그러면 누구든 좀 더 마음 편히 쉴 수 있지 않을까요.” 양(洋)의 동서가 조화를 이룬 홋카이도가 여행지로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개척 당시 유입된 유럽과 미국의 기술과 문화가 일본의 그것과 어울려 독특한 문화양식을 일궈낸 홋카이도의 실체를 안다면 좀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구라무레의 시설을 둘러보던 내내 ‘료칸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상식을 부수고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방식으로 전혀 새로운 휴식 공간 창조에 애를 쓴 건축가(마코토 나카야마)와 건축주(주인)의 열정과 노고에 감복했다. 이름마저 ‘료칸’이 아닌 ‘료테이’라고 붙인 것까지 포함해. 료테이를 굳이 설명하자면 ‘여관+요정(고품격 일본 식당)’의 합성어. 눈과 입 등 오감으로 느끼는 지극한 휴식을 상정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구라무레의 객실을 보자. 모두 19개인데 네 가지 타입이다. 객실마다 거실과 침실 2개가 있고 창문을 통해 정원이 조망되는 반(半) 로텐부로 형태의 온천욕실이 딸린 스위트룸이다. 객실의 실내는 심플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고급스럽고 기품 있었다. 일본 특유의 은은한 조명을 활용한 분위기 연출효과가 기막혔다. 객실은 소품장식도 제각각 서로 달랐다. 덕분에 네 타입이라고 해도 전 객실이 어느 하나 똑같지 않았다. 소품 가운데는 서울 남대문시장과 인사동에서 구입한 것도 있다고 주인은 밝혔다.

식당 역시 19개. 그런데 객실에 있지 않고 다른 공간에 있다. 동수(同數)의 식당과 객실이 의미하는 것. 완벽한 휴식이다. 투숙하는 동안 완벽한 프라이버시 보호는 이곳의 지상과제다. 식사도 최고급 재료를 사용한 동서양 퓨전 타입의 가이세키 요리를 낸다.

바에서 마시는 술과 음료는 모두 무료. 객실 미니바의 치즈 역시 마찬가지다. 우아한 분위기의 도서실, 명품 오디오 기기로 세팅된 음악감상실, 요가와 명상을 위한 선(禪)풍 공간, 통유리창으로 숲이 내다보이는 모던풍 다이요쿠조(대욕장) 역시 구라무레의 독특한 분위기를 살린 멋진 시설이다. 그런데 어쩌면 파격적으로도 보이는 이런 ‘와모던’ 스타일의 료칸이라면 이용자도 젊은 층으로 한정되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의외다. 40, 50대 부부가 주 고객이란다.


촬영: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홋카이도 오타루=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오타루의 명물 스시… 2만원에 10가지 맛▼

청정한 홋카이도 해산물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 오타루 시내의 ‘스시야토리(壽司屋通り)’다. 이곳은 스시 식당이 무려 130개나 밀집해 식도락 거리를 형성한 오타루의 명물. 거기서도 터줏대감 격인 ‘오타루 마사즈시(ぉたる政壽司)’ 본점을 찾았다. 오타루 마사즈시는 3대째 대물림해 영업 중인 69년 역사의 스시 집. 홋카이도에 분점이 4개나 있다.

한창 손님이 들기 시작한 점심시간. 선 채로 스시를 만들던 요리사 앞에 놓인 긴 스시테이블 저편에서 요리사복을 입은 젊은이 5명이 스시 강습을 받고 있었다. “니기리 스시 체험교실입니다. 1600엔을 내면 한 시간 반 강습을 받고 각자 만든 것을 나누어 맛보며 점심식사도 합니다.” 내 앞에서 스시를 말던 나카무라 다카유키(29) 씨의 말이다. 알고 보니 그는 대물림 스시집 마사즈시의 3대손. 도쿄 롯폰기의 스시 집에서 3년간 스시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2년째 오타루에서 일하고 있는 스시 본가 오타루 마사즈시의 ‘미래’다. 그가 만든 스시가 하나씩 접시에 놓이기 시작했다. 모두 열 종류 스시가 제공되는 코스(2800엔·약 2만원)로 가장 뛰어난 맛은 역시 하얀 지방이 분홍빛 살에 서리 내리듯 뒤섞인 도로(참치의 목덜미 살). 한 점에 1050엔(약 8000원, 세금 포함)이었다. 그가 들려 준 홋카이도 해산물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철마다, 달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생선 맛이 제각각 다릅니다. 전체적으로는 봄이 제철이지요. 고기들이 찬 겨울을 나기 위해 몸에 영양분을 많이 비축해 두니까요.” ◇오타루 스시식당 ▽스시야토리=JR 오타루역에서 그리 멀지 않다. ▽오타루 마사즈시(www.masazushi.com) 본점=오전 11시∼오후 10시 영업(화요일 쉼). 현지 전화 0134-23-0011


촬영: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 여행정보▼

◇오타루 료테이 구라무레(小樽旅亭 藏群)

▽홈페이지=www.kuramure.com ▽위치=홋카이도 오타루 시 아사리카와온천. 오타루칫코 역에서 택시로 5분 거리. ▽현지 전화=134-51-5151 ▽가격(1인, 2인1실 기준, 세금 포함)=3만6750엔. 연중 전 객실이 동일하다. ▽식사=객실별 전용식당 이용. ▽찾아가기=인천∼삿포로 대한항공 운항. ▽예약=홈페이지 통해 온라인 예약.

◇오타루 료테이 구라무레 자유여행

이오스여행사(www.ios.co.kr)는 일본어를 못해도 갈 수 있는 자유여행 패키지를 판매 중. 항공권, 료칸 숙박(하루 2식 포함), 료칸 여행안내서(자체 제작), 여행자보험 포함. 직원 한 명이 출발부터 도착까지 전담해 로밍폰으로 24시간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출발 전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길 찾기, 열차 갈아타기 등을 알려 준다.

▽상품 △3일 일정=2박, 146만 원 △4일 일정(구라무레 2박+긴린소 료칸 1박)=긴린소 본관 189만 원, 긴린소 신관(로텐부로 객실) 213만 원. △4일 일정(구라무레 2박+삿포로호텔 1박)=159만 원. △예약=홍은주 과장, 엄태훈 주임. 02-546-4674

◇관련정보 ▽한국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www.welcometojapan.or.kr)=02-777-8601 △홋카이도 서울사무소(www.beautifuljapan.or.kr)=02-771-6191 ▽현지 △홋카이도 관광정보(한글)=www.visit-hokkaido.jp △오타루 시(www.city.otaru.hokkaido.jp) △홋카이도 경제부관광진흥실=011-231-4111 △홋카이도관광연맹=011-231-0941 ▽홋카이도철도(한글)=www2.jrhokkaido.co.jp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