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답사기 30선]<15>남아 있는 역사, 사라지는 건축물

  • 입력 2007년 4월 25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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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근대건축물에 대한 보존 요구를 문화적 감상주의 또는 문화적 콤플렉스의 발로라 몰아붙이지만 역사상 배타 국수주의, 맹목적 국수주의의 폐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근대건축 답사기

요즘 암울하게 얼룩진 한국근대사를 ‘문화 경험’이라는 삶의 체험으로 재조명한 책들이 봇물 터지듯 서점가에 나오고 있다. 새롭고 다양한 감각으로 가까운 과거를 더 알려는 사회풍조는 근대문화의 대중화가 뿌리내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어 바람직한 현상이다. 한편으론 이러한 사회풍조 속에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감성이 강할수록 지성은 제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감도 감출 수 없다. 이 우려를 한꺼번에 잠재우는 책들 중의 하나가 바로 ‘남아 있는 역사, 사라지는 건축물’이다.

김정동 교수는 무엇보다 근대역사의 부재와 보존이라는 생각을 저변에 깔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사라진 건축물을 반성하면서 21세기 첫해에 출판된 것은 이러한 점에서 뜻 깊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사라진 건축물 뒤에 새롭게 나타나 도시를 장식하고 있는 건물을 스스럼없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역사성을 퇴색시키면서 개성 없는 도시로 전락하게 해 당황스럽기도 하다.

김 교수는 과거라는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붙은 ‘근대시간’을 새로운 감각과 구성으로 해동시키면서 근대의 기억 형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근대건축’에 얽히고설킨 사연을 발굴하고 한국적 근대건축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장마다 색다른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최초의 신식 무기 제조공장이었던 번사창을 통해 근대국가로 탈바꿈하려는 대한제국의 노력과 좌절, 덕수궁 한적한 곳에 세워진 정관헌의 사연, 서울 한복판에 세운 영국공사관의 숨은 이야기, 캐나다 건축가 고든이 우리에게 남긴 건축정신, 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이야기, 대천해수욕장의 선교사 별장촌, 해미읍성과 가톨릭 박해, 명동성당을 사랑한 코스트 신부 이야기, 3대 시장의 신화를 간직한 강경포구 이야기, 부산 왜관 이야기, 대전의 근현대사 등을 다루면서 참신한 읽을거리와 재밋거리를 건축 사람 장소 3박자로 엮어 생동감 있게 보여 준다.

책을 읽다 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김 교수의 빠른 행보에 먼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웬만하면 이러한 행보에 스스로 지칠 법도 한데 적어도 저자에게는 이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이는 역사는 펜 끝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이 책을 보면 역사는 발끝에서 나온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이 책은 근대건축의 대중화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동시에 역사기록의 부재를 막기 위한 면밀한 사료의 검증과 반복된 현장답사로 구성되어 있어 읽는 이에게 설득력을 더해 준다.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기에 근대건축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할 때 먼저 이 책을 읽고 답사 나가기를 권하고 싶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선대들의 삶과 함께 호흡하면서 공생해 온 근대건축을 보존이라는 영역으로 발전시키려는 김 교수의 뜻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종착역이기도 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우선 독자들에게 넌지시 던진 숙제이기도 하다.

최병하 문화재청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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