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신정아]Who are you?

  • 입력 2007년 4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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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가 시작되면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많은 고민을 한다고 한다.

미술사 수업이라 재미있을 것 같지만 까다로운 첫 시간 과제 때문에 그만둘까 말까로.

문제의 과제는 바로 ‘Who are you?’다.

‘김 아무개’ 등으로 알려진 브랜드 이름 말고 정말 나의 진정한 이름(real name)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찾아가다 보면 그동안 겉으로 보여 주었던 단편의 모습 외에 숨어 있는 여러 형태의 또 다른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 과제를 학생들에게 주게 된 것은 지나치게 브랜드에 치우치는 한국의 전시회들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작가의 브랜드보다는 작품의 본질(내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작품의 내면을 보는 눈을 갖게 하고 싶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미술 관계자가 서울에 와서 유명 인상파 작가의 전시회를 보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어느 시기의 작품이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둘러대느라 아주 곤혹스럽다.

일반적으로 대형 유명 전시회들은 몇 년에 걸쳐 많은 검증을 통해 기획되며 시기별로, 주제별로 중요한 작품을 엄정히 선별해 전시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해외 유명 작가 전시회가 많이 늘어난 한국은, 브랜드 가치에 걸맞지 않은 내실 없는 전시로 관람객들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시간에 작가의 이름, 즉 브랜드 위주의 전시로만 기획돼 대표작이나 시기별, 주제별 공간 배치를 고려하지 않은 ‘패키지 전시회’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전시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요즘은 해외여행이 부쩍 늘어 해외 미술관에 안 가 본 사람이 거의 없다. 브랜드에만 급급한 전시에 관람객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미술시장이 대호황이다. 해외 아트페어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경매가 활성화되고, 일부 ‘잘나간다’는 젊은 작가는 주문생산을 할 정도다. 그러나 그 결과 ‘묻지 마’ 식으로 호당 작품 가격이 오르고 경매를 통해 본래의 가격보다 훨씬 높게 작품이 팔리면 그 값이 아예 규정가격으로 굳어 버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일부 젊은 작가의 작품은 주문하고 기다리는 데만도 1년 넘게 걸린다고 한다. 누군가는 요즘 우리 미술시장을 놓고 “마치 주식시장 주가 조작처럼 거품이 많다”고 했다.

과연 우리 주변에 미술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그 얼마 안 되는 사람들 때문에 대호황을 이루는 미술시장이 마냥 기뻐할 일인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해외 유명 전시가 활성화되고, 미술시장이 호황을 이루고, ‘한 집 한 그림 걸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 시대가 왔음은 분명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오래 이어지기 위해서는 내실 있는 미술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들은 ‘비즈니스맨의 조건’이 떠오른다. 첫째는 자원, 자료(resource)다. 둘째는 수용능력(capacity)이고, 셋째는 리더십이다. 훌륭한 비즈니스맨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많은 자원과 자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 이 연구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이것을 끌고 갈 리더십이 필요하다.

훌륭한 비즈니스맨의 조건은 우리 삶 어디에도 다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전시회를 기획하기 위해 브랜드보다는 충분한 연구와 자료를 검토해 합당한 주제를 설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작품을 선정해 작가의 메시지를 관람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관람객은 ‘누구누구의 작품’인지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작가와 작품의 진정한 본질을 바라볼 수 있다. 미술의 진정한 대호황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신정아 동국대 교수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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