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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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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대구 전시컨벤션센터(EXCO)에서는 대구시와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 대구상공회의소 공동 주관으로 기념식이 열린다. 이날 행사에는 한명숙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김범일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각계 인사 1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기념식이 끝난 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는 운동을 주도한 김광제, 서상돈 선생의 흉상 제막식이 거행된다. 국채보상운동의 불씨를 지핀 출판사 광문사와 서상돈 선생 고택, 부인들이 패물을 처음 내놓은 장소인 대구 중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사무소에는 기념표석이 세워진다.
이에 앞서 대구시에서 선정한 민관 주요인사 100여 명으로 구성된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와 공동 발행한 기념우표 160만 장을 만국우편연합 190여 회원국에 배포했다.
추진위는 올해 국채보상운동의 교훈과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 관련 자료의 전국 순회전시회를 추진하는 한편 대구 중앙도서관 1층에 자료전시관을 열어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건립도 추진된다.
일제는 1904년 고문(顧問)정치를 시작하면서 조선을 경제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1907∼1908년 조선 정부가 일본의 차관을 도입하도록 했다. 이 차관은 일제에 항거하는 조선인을 억압하기 위한 경찰기구의 확장과 일본인 거류시설을 짓는 데 사용됐다.
차관이 눈 덩이처럼 불어나 1300만 원에 이르는 바람에 조선 경제가 파탄에 직면하자 대구 지역의 뜻있는 유지들이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에 국권회복을 위해 2000만 동포가 금연으로 모은 돈으로 국채를 보상하자는 글이 발표되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국 러시아의 재외동포들까지 모금운동에 참여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채보상운동은 3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지만 대한제국 말 최대 규모의 자주독립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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