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등장해야 고대국가의 시작…한국은 기원전 4세기경 출현”

  • 입력 2007년 1월 23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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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인류학 이론을 원용해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시기를 기원전 4세기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원건 기자
박대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인류학 이론을 원용해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시기를 기원전 4세기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원건 기자
“역사서에 등장하는 개국(開國)의 기록을 모두 국가 수립으로 볼 수 없듯이 율령 반포와 관직·관등제도의 확립을 통한 중앙집권국가만을 국가 출현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박대재(36) 편사연구사는 최근 출간한 ‘고대한국 초기국가의 왕과 전쟁’(경인문화사)이라는 책에서 한국의 고대국가 출현 시기를 기원전 4세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민족의 고대국가 성립 시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기원전 24세기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 왕검 시기로 봐야 한다는 민족주의 사학계 시각과 율령의 반포, 관직·관등제도의 확립을 기준으로 고구려 소수림왕(4세기), 백제 근초고왕(4세기), 신라 내물왕(4세기) 또는 법흥왕(6세기)부터로 봐야 한다는 실증사학계의 시각이다.

박 연구사는 이런 간극을 메울 방법으로 인간사회가 무리사회→부족사회→군장사회→국가로 진화했다는 사회학과 인류학의 이론을 한국고대사에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민족주의 사학에선 단군 왕검이 세운 고조선이나 박혁거세가 세운 사로국을 후대의 국가와 똑같은 나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인류학에서 볼 때 국가는 인구 1만 명 이상, 직경 30km 이상의 영토, 그리고 뚜렷한 계급질서가 형성됐을 경우로 제한됩니다.”

군장사회와 국가를 구별하는 기준 중 하나는 왕의 출현 여부다. 왕의 출현은 전쟁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군장사회에선 평시에는 제사장이 다스리다가 전시엔 군사지도자가 선발돼 전쟁을 지휘한다. 그러나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빈번해지면서 평시의 제사권과 전시의 군사권을 한손에 틀어쥐는 왕이 출현한다.

“군장이 지도자(leader)이라면 왕은 통치자(ruler)입니다. 따라서 고대국가는 귀족제도의 확립이 아니라 그 기초가 되는 왕의 출현에서 기원을 찾아야 합니다. ”

박 연구사는 인류학의 이런 이론을 기존 사서와 결합해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시기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는 연(燕)과 군사적 갈등관계에 돌입한 기원전 323년 고조선의 지도자(朝鮮侯)가 스스로를 왕(王)이라 칭하고 대부(大夫) 관직을 뒀다는 ‘삼국지’와 ‘위략’의 기록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이 기록과 이후 연과의 잇따른 전쟁 기록을 토대로 기원전 4세기 말 제사권과 군사권을 장악한 왕이 출현함으로써 고대 국가가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고조선 멸망 이후 설치된 한사군 등과 전쟁기록을 토대로 한반도 남부의 마한 진한 변한에서도 3세기 전후한 시기에 왕과 고대국가가 성립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연구사는 “세계 역사학계에선 1980년대부터 인류학의 연구 성과를 적극 받아들여 도시국가→분권국가→중앙집권국가로 보는 기존 서구 중심의 단계론적 고대국가 형성이론을 해체하고 분권국가 중심으로 고대국가를 재해석하고 있다”며 “우리 역사학계도 여러 다른 학문과의 소통을 통해 역사학의 지평을 넓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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