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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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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표 소설’을 기대했다간 ‘대략 난감’이다. 중단편 7편이 묶인 새 소설집 ‘참말로 좋은 날’(문학동네). 입담과 재치는 여전하지만 색깔과 무게가 다르다.
주인에게 전세금을 떼이고 살던 집을 잃은 남자(‘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재산 때문에 동생과 아들과 그악스럽게 다투는 남자(‘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소설에서 인생은 더는 재미나지 않다. 어둡고, 처절하다.
그는 왜 바뀌었을까? 14일 작가 성석제(46) 씨와 얘기를 나눴다.
―제목은 ‘참말로 좋은 날’인데 소설 속 날들은 좋은 게 아니라 우울해요. 단편 ‘환한 하루의 어느 한때’만 봐도 주인공이 오랜만에 고향에 오면 애틋하면서도 웃음 나오는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온통 가슴 아픈 기억만 튀어나오고….
“제목이 그 단편에서 뽑은 거잖아요. 할머니가 ‘아이고마, 오날 날씨 참말로 좋을세’라고 하고, 다방 마담이 ‘날씨 참 더럽게도 좋네’ 하고. 그게 날씨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는 나날을 의미할 수도 있겠죠. 내가 시를 써서 그런지(그는 시인으로 출발했다) 제목도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게 좋더라고요. 실은 최근 2년여 소설을 쓰는 동안 살아가는 모습을 ‘직찍’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둡고 대면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꽤 있더라고요. 그걸 써 보자고.”
―‘성석제표 소설’하면 ‘포복절도할 웃음+아련한 페이소스’가 특징일 텐데요. 새 소설집은 웃음기도 가시고, 문장도 짧아졌고, 내용도 묵직합니다. 변신한 건가요.
“(생을) 직면하는 부작용이랄까요. 김치로 따지면 겉절이처럼, 재료를 날것대로 토막치고 간한 것만으로 내놓은 셈이죠. 그런데 쓰고 나니 소설이 생각보다 어두워서 나 자신도 의외였어요. 체질이 바뀌었나 봐요.”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음, 그러고 보니 소설의 주인공이 대개 나처럼 40대 유부남이네요. 가정도 있고 한데 무언가 곤고하고, 그럼에도 타고난 낙천성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나 할까. 전에는 시점이나 화자를 다양하게 바꿔 보려고 했는데 요즘은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나 나 자신, 주변 사람들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다 보니 가슴이 아파요. 주인공과 나 자신이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것도 소설 쓰는 사람이 치러야 할 대가겠지요.”
―참살이(웰빙) 실천가가 한순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고귀한 신세’), 아파트 문제로 동생들과 경쟁을 벌이는 가장이 화풀이하듯 가족과 다투고(‘아무것도 아니었다’)…. 전 같으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밝고 경쾌하게 다루셨을 텐데….
“‘고귀한 신세’는 1980년대에 신문에서 ‘건강전도사가 벼락 맞았다’는 기사를 읽고 시로 써 보려고 메모했던 건데 소설이 된 경우고, ‘아무것도…’는 아파트 광풍 때문에 난리니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어요. 탐욕, 이기주의, 가족해체 같은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거죠. 그게 글맛 속에 숨어서 외면하거나 퇴행할 수 없는 문제더라고요. 전에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 잘 죽기도 했는데 이번엔 그렇지도 않잖아요.(웃음) 정말 비극적인 게 그런 거죠. 그런데 제가 요즘 또 좀 바뀌는 것 같아요. 첫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인생’이라는 ‘명언’을 써 버렸는데, 그 말이 맞나 봐요. 내가 비극 일변도로 계속 쓸 스타일은 아니고, 앞으로는 약간 무거우면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쓰지 않을까요.”
―작품은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동안이신걸요.
“밤마다 공동묘지 가서 간을 파먹거든요.(웃음) 작가들 인상이 잘 안 변하더라고요. 나만 그런 게 아니고. 하하.”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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