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그 여자가 날 데려갔어’

  • 입력 200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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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날 데려갔어/구두룬 멥스 글·이자벨 핀 그림·문성원 옮김/192쪽·6500원·시공주니어(초등 고학년 이상)

어린이 유괴를 소재로 한 심상치 않은 작품이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점을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안내서는 아니다. 반나절 정도 유괴사건의 대상이 된 아이의 체험을 담은 소설이다. 어린이 눈높이에서 전하는 사건은 아슬아슬한 범죄소설 같기도 하고 상실의 아픔 가득한 심리소설 같기도 하다.

율리라는 말라깽이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태어나자마자 치과의사에게 입양된 율리는 외롭다. 아빠는 만날 남의 입 속을 들여다보느라 밤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늘 혼자다. 그나마 버려진 새끼 고양이 트리스탄이 유일한 친구.

어느 날부터 오전 10시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학교 앞에 뚱뚱한 아줌마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줌마는 흐린 날에도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까만 가죽잠바와 까만 바지를 입고 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영화배우가 틀림없다고 수군거리고, 아줌마한테 사인을 받아오는 내기를 한다. 율리는 친구들보다 앞서 사인을 받기 위해 아줌마에게 다가가는데….

‘머리가 그새 어마어마하게 커진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축구를 하며 계속 내 이마를 향해 공을 차 대는 것만 같았다.’

아줌마가 뿌린 하얀 가루 때문에 정신을 잃은 뒤 낯선 방에서 깨어난 율리가 두통을 호소하며 한 말이다. 온통 분홍색으로 장식된 아기 방. 아줌마는 율리를 보며 “린다, 내 귀여운 아기”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군다.

짐작대로다. 정신 나간 아줌마가 저지른 유괴사건. 창문은 널빤지로 막아놓아 밖이 내다보이지도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공포와 긴장이 고조된다.

그러나 율리는 당찬 아이다. 아줌마에 맞서 아줌마의 팔뚝을 피가 나도록 세차게 깨물기도 하고, 아기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가 아줌마의 돌발행동을 예상하고 감쪽같이 치워놓기도 한다.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줌마의 사연이 하나둘 드러난다. 아줌마에게는 린다라는 아이가 있었다. 수년 전 린다가 영아돌연사로 죽자 마음의 병을 앓다가 린다 또래의 아이를 유괴하고는 린다가 돌아왔다고 믿는 것이다.

율리는 외로움을 아는 아이다. 그래서 그리움을 잘 이해한다. 율리는 자신을 유괴했지만 잃어버린 딸을 몹시 그리워하는, 외로운 아줌마를 차츰 동정하게 된다.

아이들이 외로움이나 그리움을 잘 모르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이다. 율리와 똑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자신과 남에 대해 인식하면서 삶의 아픔에 공감한다.

유괴사건의 결말은? 걱정할 필요는 없을 정도지만 가슴은 여전히 아프다.

‘갈 테면 가 봐!’ ‘뽀뽀쟁이 프리더’ 등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구두룬 멥스 씨는 이번에도 깊은 통찰력과 단단한 필력으로 글 읽는 맛을 듬뿍 선사한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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