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9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개관

  • 입력 2006년 10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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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이 예순두 살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에게 악마가 다가온다. 악마는 라이트에게 간단한 수수께끼를 풀면 청춘을 되돌려 주겠다고 약속한다.

“어떻게 직선으로 3차원 형태를 만들 수 있지?”

“그거야 쉽지.”

라이트는 곧장 나선형을 그린다. 이것은 뒷날 그의 인생 최후의 걸작품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골격이 되었다. 로버트 르파지의 연극 ‘기적의 기하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솔로몬 R 구겐하임은 1930년대 은퇴한 뒤 미술품 수집에 열중했다. 그는 1939년 뉴욕의 자동차 전시장을 개조한 미술관에서 첫 소장품 전시회를 열었다. 몇 년 되지 않아 그의 수집품은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마르크 샤갈의 작품 등으로 방대해졌다. 구겐하임은 1943년 라이트에게 “세상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집을 지어 달라. 미술관이 아니라 ‘영혼의 사원(temple of spirit)’을 지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로부터 16년 뒤인 1959년 10월 21일. 뉴욕 5번가에는 거대한 컵케이크를 거꾸로 엎어 놓은 듯 괴상야릇한 흰색 콘크리트 빌딩이 문을 열었다. 당시로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대미술 컬렉션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새로운 구겐하임 미술관이었다.

“벽과 천장과 바닥이 한데 얽혀 흐르면서 다른 부분의 일부가 되게 하라.”

평생 자연과 건물이 하나 되는 ‘유기건축’ 철학을 내세웠던 라이트가 세운 구겐하임 미술관은 전체 건축물이 출입구에 있는 분수를 둘러싸고 올라가는 하나의 동굴이었다. 사람들은 총 15마일에 이르는 나선형 통로를 따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거나 거꾸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특이한 전시 형식과 바깥의 벽에 걸린 그림들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방문객들을 매혹시켰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술관에 소장된 수집품 중 가장 빛나는 현대미술 걸작”이라는 찬탄과 “세탁기처럼 보인다. 꼬인 리본 덩어리 같다”는 비난도 이어졌다. 또한 윌럼 드 쿠닝 같은 작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곡선 벽에 전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화를 냈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매년 9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현대미술의 메카가 됐다.

“대부분의 작가는 얌전한 창고를 원한다. 미술가들은 자기 작품보다 더 튀는 구겐하임을 싫어하지만 관객들은 좋아한다. 구겐하임에 서면 관객들은 비로소 ‘오늘의 사람’이 되고 들뜬 기분에 휩싸인다.”(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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