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6년 10월 13일 03시 0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그만큼 파무크 씨는 세계적인 작가다.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세속주의, 세계화와 지역주의, 서구문명과 동양문명, 신과 인간, 진보와 보수 등 ‘이질적인 문화의 갈등과 소통’문제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묵직한 주제의식과 정교한 작품구조에 전 세계 독자들은 열광했다.
그의 소설 세계는 조국 터키의 지리적 특수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접점에 있는 터키는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하는 중간 지대다. 터키의 위치와 역사는 파무크 씨의 소설을 설명하는 큰 열쇠이기도 하다.
1985년 발표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작품 ‘하얀 성’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젊은 학자가 터키 해적에게 납치돼 이스탄불에서 서구의 과학, 기술, 의학을 가르치는 과정을 그렸다. 소설에서는 동서양의 만남과 갈등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신(神) 중심의 회화기법인 이슬람 세밀화와 인간 중심의 서양화 스타일이 충돌하는 과정을 그린 ‘내 이름은 빨강’(1998년)은 파무크 씨의 히트작이다. 화가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소설은 추리소설과 연애소설이라는 이질적인 양식을 정교하게 교직한 작품이다. 이 책으로 유럽의 각종 문학상을 받았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2년 발표한 소설 ‘눈’은 폭설로 길이 차단된 터키의 국경 도시 카르스에서 사흘 만에 막을 내린 쿠데타를 큰 줄기로 삼았으며 신과 인간, 종교와 정치의 갈등, 그리고 비극적인 사랑이 설경과 함께 펼쳐진다. 그의 작품을 번역한 이난아(40·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 강사) 씨는 “건축가가 건물을 세우고 창을 만들고 마루를 놓듯 그는 치밀한 계획하에 글을 쓰며 그렇게 쓰인 소설에는 정교한 지적 재미가 스며 있다”고 말한다.
파무크 씨의 문학의 저력은 무엇보다 뜨거운 창작열에서 나온다. 그의 좌우명은 ‘창작 시 첫째도 인내, 둘째도 인내, 셋째도 인내’다. 파무크 씨와 수차례 만났던 이난아 씨는 “항상 오전 5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저녁에는 만년필 뚜껑을 열어 잉크의 양을 확인할 정도”라고 전했다.
파무크 씨의 책들을 출간한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아랍식 이야기 전통과 모던한 현대소설 기법을 결합해 아랍문학의 경지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요즘 그는 연모하는 사촌누이의 팔찌, 귀고리 등을 모아 박물관을 짓는 한 남자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를 그린 ‘순수 박물관’을 집필 중이다. 새벽마다 펜을 드는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감의 요정이 언제 내 등을 두드리고 귀에 속삭일지 모릅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조국의 ‘쿠르드 탄압’ 고발한 터키 문학의 양심
일찍이 시인을 꿈꿨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뮤즈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서” 꿈을 거뒀다. 그 다음엔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건축가의 가업을 잇기 원했던 아버지는 화가와 건축가의 중간쯤 되는 설계사가 되라고 했다.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하다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것을 글로 써봤는데, 그게 소설이라는 걸 알았다. 대학을 자퇴했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
1952년 터키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오르한 파무크 씨의 작가의 길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뒤부터는 승승장구였다.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1982년)이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수상했다. 두 번째 소설 ‘고요한 집’(1984년)으로 ‘마다랄리 소설상’과 프랑스의 ‘유럽 발견상’을 받았다. 1985년 발표된 세 번째 장편 ‘하얀 성’으로 “동양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뉴욕타임스)는 격찬을 받는다. 이 소설이 13개 나라에 번역 출간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 매김했다. 이후 ‘흑서’(1990년) ‘새로운 인생’(1994년) ‘내 이름은 빨강’(1998년) 등 문제작을 잇달아 내놓았고 보르헤스, 나보코프와 비견되는 독창성과 전위성을 인정받았다.
2004년 이스탄불 자택에서 가졌던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30년간 오로지 펜으로 써왔다. 악필이라 단 한 사람의 편집자만이 내 글을 알아보고 타이핑해 준다”고 집필 스타일을 밝히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이 작품의 문학성뿐 아니라 작가의 사회적 활동을 고려해 온 것에 비춰 보면, 사회 참여적 지성으로 알려진 파무크 씨의 수상은 일찌감치 점쳐졌다. 그는 지난해 터키 정부로부터 국가모독죄로 기소됐다.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과 3만 명의 쿠르드인이 터키인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파무크 씨에 대한 재판은 지난해 12월 시작됐으나 유럽 지식인 사회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터키 법원은 올해 초 그에 대해 무죄를 결정했다.
터키에서는 그의 수상 소식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료 문인들을 비롯해 무스타파 이센 터키 문화부 장관 등은 “터키 문학이 국제적으로 조명받게 돼서 기쁘다”고 환영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를 ‘배신자’라고 여기는 골수 민족주의자들은 스웨덴 한림원을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이모부에게서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지난해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던 파무크 씨는 “터키인들에게 한국은 형제 같은 나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는 파무크 씨는 “행복하고 영광스럽다. 한동안 기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정부-언론 외래어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이름을 ‘오르한 파무크’로 표기합니다.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