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누구인가

  • 입력 2006년 10월 12일 21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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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버지처럼 건축가가 되려고 했다. 일찍이 시인을 꿈꿨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뮤즈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서" 꿈을 거뒀다.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하다가 상상하던 것을 써봤는데, 그게 소설이라는 걸 알았다. 대학을 자퇴했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

오르한 파무크 씨는 1952년 터키 이스탄불의 부유한 건축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터키의 철도 건설을 도맡은 갑부였고 아버지도 건축가였다. 그렇지만 건축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파묵 씨는 문학을 업으로 삼게 된다.

첫 걸음부터 화려했다. 작가의 길에 들어선 뒤 5년 만에 낸 소설 '케브데트 씨와 그의 아들들'(1979)이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수상했다. 두 번째 소설'고요한 집'(1983)으로 '마다라르 소설상'과 프랑스에서 주는 '1991년 유럽 발견상'을 수상한다. 1985년 발표된 세 번째 장편 '하얀 성'으로 "동양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뉴욕타임스)는 격찬을 받는다. 이 소설이 13개 나라에 번역 출간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흑서'(1990) '새로운 인생'(1994) '내 이름은 빨강'(1998) 등 문제작을 잇달아 내놓았고 보르헤스, 나보코프와 비견되는 독창성과 전위성을 인정받았다. 2004년 이스탄불 자택에서 가진 본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30년간 오로지 펜으로 써왔다. 졸필이라 단 한 사람의 편집자만이 내 글을 알아보고 타이핑해준다"고 집필 스타일을 밝히기도 했다.

노벨문학상이 작품의 문학성뿐 아니라 작가의 사회적 활동을 고려해온 것에 비추어, 파묵 씨의 수상은 일찌감치 점쳐졌다. 그는 지난해 터키 정부로부터 '터키 모욕죄(형법 301조)'로 기소당했다.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과 3만 명의 쿠르드인이 터키인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가 저질렀던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쿠르드 민족에 대한 박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터키는 1915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파무크에 대한 재판은 지난해 12월 시작됐으나 유럽 지식인 사회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터키 법원은 올 초 그에 대한 기소를 기각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그의 이모부가 한국전쟁에 참전, 한국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지난해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던 파묵 씨는 "터키인들에게 한국은 형제 같은 나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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