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번오는 한글날♪ 랩으로부활하는 우리말♩

  • 입력 2006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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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맞아 한글 예찬을 나눈 ‘가리온’의 메타,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 ‘부가킹즈’의 바비킴(왼쪽부터). 박영대 기자
한글날을 맞아 한글 예찬을 나눈 ‘가리온’의 메타,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 ‘부가킹즈’의 바비킴(왼쪽부터). 박영대 기자
“일년에 한 번 오는 한글날/오늘 여기서 풀어 내 맘에 담는 말/랩을 통해 말을 담금질하는 자/우리말을 통해 우리 맘을 찾는 자∼.”

한글날 기념 랩 한 소절을 부탁하자 즉석에서 A4 용지에 라임(각운)을 만든 3명의 래퍼,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서정권·32), ‘부가킹즈’의 바비킴(김도균·33), ‘가리온’의 메타(이재현·35). 국내 힙합계를 대표하는 이들을 만나 한글 예찬론을 들었다.

○ 래퍼(Rapper)의 ‘한글학’

▽메타=1990년대 초반 현진영, 서태지, 듀스 등 래퍼들이 있었는데 한글 랩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영어 랩은 ‘쿨’, 한국 랩은 ‘구리다’는 고정관념도 있었다. 한글의 특성을 생각지 않고 영어 랩의 느낌을 그대로 구현했던 게 문제였다.

▽타이거JK=간주에서 단순히 한글 랩을 나열하는 식으로 일정한 패턴도 없었다. 한글만의 묘미가 살아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래퍼들은 도치를 하거나 시적인 형식을 빌려 과감하게 생략하는 등 실험을 계속했다.

▽바비킴=한글은 분절음이다. 이 때문에 영어처럼 굴려 발음을 뭉개면 의미 전달이 안 된다. 그때 깨달은 것이 한글의 특성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한글은 글자 하나하나 뱉을 때 맛이 살아난다. ‘가’ ‘질’ ‘수’ ‘없는’ ‘나’ 식으로 끊어 포인트를 넣는 것이다.

(에미넘 주연의 영화 ‘8miles’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래퍼들은 생각나는 언어를 수첩에 적고, 운율을 만들고 기발한 언어 구성이나 조합을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이들은 “한글학자나 언어학자처럼 정교한 이론은 없지만 한글 랩을 만드는 과정에서 몸소 체험한 한글의 배치나 구성 노하우 등 다양한 경험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타이거JK=한글을 단순히 나열하던 방식에서, ‘∼했어 ∼갔어’처럼 모음으로 각운을 맞추는 2단계로 진화했다. 그 다음에는 모음이 아니라 ‘∼거 ∼서 ∼다 ∼고’ 등 1음절 자음 각운을 활용했다. 이후 2음절, 3음절, 다(多)음절 각운을 사용하자 한글의 묘미가 살아났다.

▽바비킴=‘Blue sky’보다 ‘푸른, 파란, 파랑 하늘’ 같이…. 영어 랩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훨씬 느낌이 좋다. 예를 들어 ‘My porket is empty’를 ‘내 주머니가 텅텅 비었어’하는 것보다 ‘가진 게 없는 나’로 바꾸니 가사에 한(恨)이 담겨지더라.

○ 한글 파괴보다 한글의 진화로

래퍼들의 한글 사랑은 가볍지 않다. “잠자리에서 천장을 보면 단어가 날아 다닌다”고 입을 모았다.

▽메타=옛 한글도 연구했다. 그룹 이름인 ‘가리온’(몸은 희고 갈기만 검은 말)도 순수 우리말이다. 한글의 자부심을 살리기 위해 ‘평양어 사전’도 봤다. 내 고향이 대구여서 사투리까지 끄집어내고자 했다.(웃음)

▽타이거JK=가요 대백과의 가사를 비롯해 시집이나 불경도 읽었다. 특히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한글 의성어에 관심을 기울였다. 훈민정음을 랩으로도 만들어 봤다. (하지만 한글 랩의 파격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기성세대는 지나친 생략이나 도치 등을 한글 파괴로 지적한다)

▽메타=(그런 지적은 인정하지만) 지나친 고정관념으로 스스로 한글의 창의성을 봉인해선 안 된다. 창조에는 파괴가 따른다. 한글 자체에 대해 ‘그래야만 한글이고 그래야만 한글로서의 랩’이라고 고정하는 것은 스스로 날개를 자르는 일이다.

▽타이거JK=언어가 현실을 비추면 된다. 랩에 ‘요강’, ‘라샬락 붕(의성어)’이 있다고 방송심의에 걸린 적이 있는데 한글 파괴보다 ‘확장’으로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자메이칸 등 많은 인종이 영어 속에서 자신의 언어 정체성을 구현해 낸다.

▽메타=뭐 그래도(웃음) 한글 랩은 진화 중이다. 한번은 외국 가서 공연하는데 중국인들이 ‘한국 랩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한글 래핑이 너무 멋있다고….

▽타이거JK=‘맘에 소리를 내주는 한글/을 통해 통곡해 내뱉어 내 한을/저 푸른 하늘 위로 던져봐 나의 맘을/기다려 가을 지나 돌아올 여름에 저녁노을.’ 멋지지 않은가?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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