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버리고 현실 찾았다… 3년만에 돌아온 ‘체리필터’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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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혼성 록 밴드 ‘체리필터’가 21일 4집 음반 ‘피스 앤드 록 앤 롤’을 낸다. 3년 만에 낸 이 음반은 예전과 달리 절반 이상의 곡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사운드를 담고 있다. 강병기 기자
4인조 혼성 록 밴드 ‘체리필터’가 21일 4집 음반 ‘피스 앤드 록 앤 롤’을 낸다. 3년 만에 낸 이 음반은 예전과 달리 절반 이상의 곡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사운드를 담고 있다. 강병기 기자
《“정말 낯설군요….” 3년 만의 첫 인터뷰. 11일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이들에게는 3년간의 공백이 그대로 나타났다. 주위 두리번거리기,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 “음악 어떠세요?”라며 조심스레 반응 살피기…. 낯섦은 이미 몸에 밴 상태였다.》

○ 낭만 고양이, 낭만을 버리다

“3년간 ‘체리필터’의 정체성을 지키느라 힘 좀 뺐죠. 더는 록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 가요계, 우리를 유혹하는 상업적인 기획사들…그래도 우리는 작사, 작곡, 편곡을 스스로 해내는 라이브 록 밴드라는 자존심은 버리고 싶지 않았어요.”(정우진·기타)

2002년 2집 ‘낭만 고양이’를 시작으로 이듬해 3집 ‘오리 날다’까지 4인조 혼성 록 밴드 ‘체리필터’는 사랑 노래에 신물이 난 가요계에 ‘산소’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젠 고양이도, 오리도 없다. “계속 낭만만 따지기엔 앞이 보이지 않았다”는 4명의 ‘낭만 고양이’들. 인터뷰는 초반부터 녹록지 않았다.

“‘낭만 고양이’의 히트로 사람들의 기대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만 갔어요. ‘동물 농장 밴드’, ‘유치한 밴드’ 등 비판도 많았죠. 자연스레 달콤한 인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났어요.”(조유진·27·보컬)

9년간 함께해 온 멤버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왜 사람들은 ‘낭만 고양이’ 한 곡으로 우리를 평가할까” “동물 시리즈를 계속한다면 비판받을 거야” “우리가 록 밴드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4집 회의는 결국 3년 만에 “밴드 본연의 음악을 하자”는 데 합의했다. ‘낭만 고양이’가 ‘현실 고양이’가 된 셈.

○ 오리 날다 그리고 록을 찾다

“앨범 제목 ‘피스 앤드 록 앤 롤’은 고요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자유로움을 즐기라는 뜻이에요. 이번 앨범은 가슴이 고동칠 정도로 원초적인 록 밴드 음악에 근접하고 싶었어요.”(손상혁·드럼)

21일 발매되는 4집 ‘피스 앤드 록 앤 롤’은 모던 록풍의 타이틀 곡 ‘해피 데이’ 부터 ‘낭만 고양이’식의 발랄함을 부정했다. 각박한 세상을 전쟁터로 비유한 ‘전장의 마돈나’, 원조교제로 대표되는 문란한 성생활을 빗댄 ‘포이즌 애플’, 테크노 리듬이 돋보이는 ‘틈’ 등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사운드가 수록된 12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마치 초창기 인디밴드 시절로 돌아간 듯한 이들의 4집. 밴드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된 듯하다. 1등 공신은 바로 여성보컬 조유진. 마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사춘기 소년처럼 거칠다. 발라드 곡 ‘아이 스테이 히어’마저도 암울하고 건조하다.

“30을 바라보는 또래 여자들의 불안감을 담았다고 할까요? 시집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들지만 돌이켜보면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것도 없는 것 같고…‘오춘기’에 빠진 여성의 목소리로 노래했어요. 그건 또 다른 제 자신이기도 하고요.”(조유진)

밴드 결성 9년째. “아휴, 우린 설날, 추석 때도 만나요”라며 ‘지겨운 척’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밴드 결성 후 딱 한 번 술을 마셨어요. 아직도 일주일에 영화는 한 편씩 보고 여행도 가고 게임도 하고…술 없이도 잘 지내요.”(연윤근·베이스)

가족 같은 이들이 외치는 것은 하나. 인기에 연연한 밴드보다 꾸준히 사랑받는 밴드가 되고 싶다는 것. MP3가 CD를 잡아먹은 지 오래된 세상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앨범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외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멤버들이 말했다. “이제 진짜 컴백한 느낌이 든다”고. ‘낭만 고양이’들의 낭만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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