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은 숙안에게 ‘떠나보낼 수 없는’ 시간이다. 광복 직전, 집안의 쇠붙이까지 전쟁 물자로 쓰겠다고 강탈해 갈 정도로 일제의 만행은 절정에 이르렀다. 할아버지의 생일잔치에 내놓을 수 있는 건 기장떡뿐, 그나마도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잔칫상을 뒤엎는 바람에 엉망이 된다.
이 책은 대학 때 도미해 중고교 역사 교사로 20여 년 근무한 최숙렬(68) 씨의 자전소설이다. 평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에 일제 말기와 6·25전쟁을 겪은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겼다.
광복이 되면서 악몽 같은 날들이 끝난 줄 알았더니 이번엔 소련군이 마을에 들어온다. 감시와 선전,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가족들은 정든 평양을 떠나 월남하기로 결정한다. 어린 숙안은 무사히 38선 철조망을 넘을 수 있을까.
극적인 내용이지만 이야기는 차분하게 전개된다. 감정을 절제하는 작가의 어조에서 오히려 그 시절의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오롯하게 전달된다. 이 책은 세계 각국에 번역 출간됐고 전미도서관협회 최우수 도서로 선정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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