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6년 총독부 이완용 부고사설 삭제

  • 입력 2006년 2월 1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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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바르고 나라를 자기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정치가.’

‘대한(大韓)의 몇 째 안 가는 재상.’

‘황상 폐하를 보호하여 우리나라 자주독립의 권리를 튼튼케 한 인물.’

최초의 한글신문 ‘독립신문’이 대한제국 때 여러 차례 극찬한 이 정치인은 누구일까.

놀라지 마시라.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李完用)이다.

독립협회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며 세운 독립문의 편액(扁額)도 그의 작품이다.

한때 이완용도 촉망받는 공직자였고 뛰어난 서예 실력을 가진 선비였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가열 찬 매국의 길로 접어들었을까.

‘이완용 평전’의 저자 윤덕한 씨는 “그는 일제의 조선 강점이라는 대세를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인 ‘대세 순응형’이었다”고 평가한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 문제를 논의하는 어전회의장. 이완용은 “국력이 약한 우리가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진대 원만히 타협하고 우리의 요구도 제기하는 것이 좋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쩌면 그도 ‘훗날 역사가 평가하리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죄악은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했다.

1926년 2월 13일 동아일보 1면 사설 제목은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 이틀 전(2월 11일) 숨진 이완용에 대한 것이다. 형식은 요즘의 부고 기사와 다를 바 없지만 내용은 ‘잔잔한 애도’ 대신 ‘피 끓는 분노’가 넘쳐난다.

“그도 갔다. 그도 필경 붙들려갔다. 보호순사의 겹겹 파수와 견고한 엄호도 저승차사의 달려듦 하나는 어찌하지 못하였다. 너를 위하여 준비하였던 것이 이때였다. 아무리 몸부림하고 앙탈하여도 꿀꺽 들이마시지 아니치 못할 것이 이날의 이 독배이다.”

사설의 마지막 문장은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예고했다. “어허! 부둥켰던 그 재물은 그만하면 내놓았지! 악랄하던 이 책벌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

조선총독부만이 그의 가는 길을 위로했다. 총독부는 동아일보의 위 사설을 포함해 당시 ‘이완용 비난 부고 기사’들을 압수해 버린 것이다. 총독은 “동양 일류의 정치가인 이완용 후작의 죽음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슬퍼했다.

살아서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 이완용. 그가 ‘내 부고 기사에는 어떤 내용이 실리게 될까’를 생각하며 정치를 했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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