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묵상-깨달음의 순간 짧은 이야기로 응축…‘문장’

  • 입력 2006년 1월 2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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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최인호 지음·이보름 그림/전2권 각 194쪽·각 8500원·랜덤하우스중앙

미국 소년 존 그린 한닝은 성격이 불같았고, 꼭 앙갚음을 하곤 했다. 아버지와 싸운 뒤 아버지의 창고에 불을 지르고 가출했을 정도다. 하지만 나이 들어 만난 연인이 가톨릭 신자라 수도원 생활을 요구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말썽은 끊이지 않았다. 수도원장에게 칼을 휘두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무릎을 꿇고 개과천선을 다짐했다. 그는 꼭 앙갚음을 하고 마는 자신의 성미에 대해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는 “하느님께 앙갚음하겠다. 나의 천성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앙갚음’으로 그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문장’에 실린 일화다. 이 책은 작가 최인호 씨가 틈틈이 써 온 짧은 글들을 모은 ‘수상록(隨想錄)’이다. 고전에서 읽은 감동적인 대목들, 살아오면서 스친 생각들이 벼룩처럼 그의 머리 바깥으로 달아나기 전에 포충망으로 잡아내 만든 책이다.

번뜩이는 단상들보다는 잔잔하게 인생을 관조한 결실들을 콜라주처럼 오려 붙여 오래 음미할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 놓았다.

몇몇 사람에 대한 추억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 나는 다른 아이들 어머니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오면 숨어 버리곤 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다녀간 다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고 선생님께 여쭤봤다. ‘우리 인호는 칭찬해 주면 좋아한다. 칭찬을 많이 해 주시라’고 하더라는 대답에 나는 속으로 울었다.” “마흔여섯 살에 세상을 떠난 영화 촬영기사 장석준의 재킷에는 온갖 철제 부속품이 들어 있었다. 다른 사람은 입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무거운 옷에 든 고물들을 두드려 맞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70mm 영화 촬영 기재를 만들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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