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배꼽잡는 로맨틱 코미디 ‘작업의 정석’

손예진(왼쪽)과 송일국이 ‘작업계의 지존’을 가리는 막상막하의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작업의 정석’. 사진 제공 젊은 기획

21일 개봉된 ‘작업의 정석’(감독 오기환)은 어수선한 연말의 우울함을 단숨에 날릴 만한 유쾌, 경쾌, 상쾌한 웃음이 필요한 젊은 관객들에게 안성맞춤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작업 9단’인 남자와 여자 간에 밀고 당기는 에피소드들이 얽히고설켜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웃음 펀치를 날리기 때문이다.

단, 제목을 보고 영화의 재미뿐 아니라 ‘선수 되는 비법’까지 한 수 얻고자 하는 불순한(?) 기대를 품고 극장을 찾는다면 한 가지 유념할 점이 있다. 실생활에서 써먹을 법한 정보(전화벨이 아홉 번 울릴 때까지 받지 마라, 내가 가는 곳에 남자를 오게 만들라 등등)가 간간이 나오지만, ‘작업’의 획기적인 성공비결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영화는 ‘작업계’의 고수인 건축설계사 서민준(송일국)과 펀드매니저 한지원(손예진), 세련된 두 도시 남녀가 나름대로 ‘지존’ 자리를 놓고 치열한 대결을 벌이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작업은 기술이 아니라 과학이다’라는 대사처럼 두 남녀는 그야말로 과학적으로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상황을 꼼꼼하게 연출하고, 그 안에서 상대의 대사와 반응을 예측해 자신들의 다음 행동수순을 이어가는 치밀함과 ‘프로정신’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익살스럽고 간지러운 대사들, 톡톡 튀는 말풍선과 이모티콘을 활용하는 문자 메시지, 무림 결투 패러디와 속옷 차림의 란제리 파티 등의 에피소드, 예기치 못한 반전이 펼쳐지면서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선 겉과 속이 다른 남자의 양면성에 비해, 비교적 미개척지라고 볼 수 있는 여자들의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보다 남성 관객들이 꽤 재미를 느낄 법하다. 많은 남자들에겐 여전히 ‘청순’ 코드가 먹히지만 실제 여자들이 그렇게 살진 않는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으로 영화의 첫 주연을 맡은 송일국도 호연을 펼치지만 손예진의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믹 연기야말로 웃음의 1등 공신이라 할 만하다. 현철의 ‘사랑의 이름표’에 맞춰 춤을 추고, 잘생긴 남자를 보고 ‘맛있겠다’고 입맛을 다시며, 유럽행 비행기표 경품이 탐나 노골적으로 야한 댄스에 도전하고, 커다란 양푼 비빔밥을 천연덕스럽게 껴안고 있는 손예진을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청순가련형에서 애교와 섹시모드, 푼수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는 손예진은 카메론 디아즈와 리즈 위더스푼이 부럽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확 깨는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이 밖에 스토커 수준인 한지원의 전 애인 강성모 역의 박용우, 원조 바람둥이 겸 서민준의 아버지 역의 노주현, 두 고수가 애인을 차버릴 때 단골로 애용해온 점쟁이 역의 안상태 등 조연들의 캐릭터와 연기가 살아있는 점도 영화의 맛깔을 더해준다.

물론 두 사람의 대결구도를 과장하다 못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벌이는 소동, 이야기에 녹아들지 않는 강원도 갑부의 등장에다 헬기와 경비행기의 출연은 억지스럽긴 하다. 또한 촘촘하게 이어지던 재기발랄한 에피소드에 비해 큰 기대를 걸었던 결말 부분은 좀 허전하다. 15세 이상.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