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503년 노스트라다무스 출생

입력 2005-12-14 03:00수정 2009-10-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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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예언은 참으로 마법과도 같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더할 수 없이 모호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수정처럼 확실해진다!”

16세기 프랑스의 점성가 미셸 드 노트르담(라틴명 노스트라다무스).

그의 추종자들은 “1999년 7월의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며 지구 종말을 예언했다. 그러나 이날은 그저 무심히 지나갔다. 그해 7월 18일 존 F 케네디 주니어 부부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태 뒤인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빌딩이 무너지던 날, 그 악마의 전율 속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다시 잠에서 깨어난다. 종말론의 새로운 버전이 인터넷에 급속히 유포됐다.

“신의 도시에 거대한 번개가 떨어질 것이다. 두 형제는 혼란에 의해 찢어질 것이며 요새가 견디는 동안 거대한 지도자는 굴복할 것이다….” ‘신의 도시’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뉴욕을, ‘두 형제’는 쌍둥이빌딩을, ‘요새’는 펜타곤을 가리킨다니 오싹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예언은 짜깁기로 드러났다. 1000여 편을 헤아리는 그의 예언시 곳곳에서 끌어와 억지로 꿰맞추고 일부는 조작됐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참사를 내다봤다?

그의 신봉자들은 폭발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예언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으나 사고가 터지자 어디선가 묘한 글귀를 끄집어냈다. “인간의 무리 중에서 9명이 밖으로 보내질 것이다….”

의사이며 약사이자 발명가이기도 했던 노스트라다무스. 프랑스 몽펠리에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그 시대에 지동설을 믿은 선각자였다. 누구보다도 과학의 실험정신을 믿은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영화 ‘노스트라다무스’에서 마법사의 이미지를 벗고 인도주의적 의사로 그려진다. 흑사병 환자들에게 현대적 시술을 처음 선보였다.

법의학의 원조로 꼽히는 그의 탁월한 의학적 지식은 사람들에게 이적(異蹟)으로 비쳐졌음직도 하다. 암호처럼 씌어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는 당대 사회의 모순과 질곡을 비판하기 위한 연막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이 쓴 시가 20세기에 이르러 이처럼 거대한 ‘예언 사업’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과학의 대중화 작업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 틈새로 사이비 과학과 반(反)과학이 독버섯처럼 피어난다”(칼 세이건)고 했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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