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사실적으로 日常 묘사한 그림전 잇따라 열려

  • 입력 2005년 11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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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세밀하게 묘사된 그림이라는 게 놀랍다. 이지송 씨가 그린 ‘권태로운 놀이’(2005년). 아래로 떨어뜨린 남자의 시선, 벗겨진 여성용 샌들, 그리고 무심하게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시선까지 모두 권태로운 일상의 한 단면을 포착한 듯 순간적이다. 사진 제공 아트포럼 뉴게이트
사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세밀하게 묘사된 그림이라는 게 놀랍다. 이지송 씨가 그린 ‘권태로운 놀이’(2005년). 아래로 떨어뜨린 남자의 시선, 벗겨진 여성용 샌들, 그리고 무심하게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시선까지 모두 권태로운 일상의 한 단면을 포착한 듯 순간적이다. 사진 제공 아트포럼 뉴게이트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해 사실적으로 그리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12월 들어 봇물처럼 이어진다. 미니멀, 설치, 개념 미술이 주류를 이루었던 화단에는 최근 들어 삶의 디테일과 손맛을 강조한 회화들의 복원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복잡하고 난해한 미술을 넘어서 나(I), 우리(We)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 주자는 이러한 흐름은 이념이나 관념을 벗어난 실용주의적 삶의 태도, 집단이 아닌 개인에 주목하는 문화 트렌드의 일환으로 보인다.

또 깊은 손맛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 이들의 작품은 가히 사진에 버금가는 묘사력을 자랑한다. 바야흐로 영상 세례를 받은 세대답게 이미지의 표현에 그만큼 충실하다는 증거이다.

▽‘스냅사진처럼’ 이지송전=12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트포럼 뉴게이트(02-737-9011, 9013)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서양화가 이지송(30) 씨의 캔버스들은 스냅사진처럼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그의 그림은 차가운 카메라 렌즈가 포착한 듯 작가의 감정 개입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아래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거나 아예 고개를 돌리고 혼자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타인과의 소통에 실패하거나, 혹은 소통 그 자체를 원하지 않는 개별화된 현대인들의 초상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컴퓨터, 휴대전화기, 일회용 컵, 담배 같은 사물들과 그림의 무대인 작업실, 사무실, 침실과 같은 장소 역시 낯익어 남의 은밀한 공간을 엿보는 듯한 관음증적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풍경’ 정재호전=12월 1∼11일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02-720-5114)에서 개인전을 여는 한국화가 정재호(34) 씨는 일상적으로 스치는 도시풍경에 주목한다. 이번 개인전의 주제는 ‘오래된 아파트’. 종이에 목탄이나 먹, 채색 등 다양한 재료로 서울 중구 회현동 시민아파트, 종로의 YMCA 건물 등을 그렸다.

담담한 색채로 세밀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은 마치 색 바랜 사진처럼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게 한다. 개발과 질주의 변방에서 살아남은 공간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시선이 느껴진다. 문득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일상이 이야기처럼 떠오른다.

▽‘구름’ 강운전=다양한 구름을 그리는 작가 강운(41) 씨는 하늘을 찍은 듯 선명하고 세밀하다. 12월 6일까지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 갤러리(02-730-7817)에서 한결 담백해진 근작들을 모아 개인전을 갖는다. 마치 잔디밭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그의 그림은 자연의 한 풍경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강 작가는 “나의 시골생활은 항상 낯익은 풍경과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서 오는 무료함과의 대결이다. 변화무쌍한 하늘과 바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구름, 밝음과 어둠을 지닌 빛 같은 자연 속 일상의 느낌들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학의 일상’ 최석운전=12월 1∼20일 종로구 인사동 가람화랑(02-732-6170)에서 개인전을 여는 작가가 그린 일상은 해학이 특징. 한국의 민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화려하고 밝은 색채감각에 운동화를 신은 견공(犬公)이나 풍욕하는 사람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에는 경쟁과 질주를 멈춘 느림의 삶이 담겨 있다.

▽‘뒷모습’ 이영조전=12월 6일까지 종로구 견지동 목인갤러리(02-722-5055)에서 개인전을 갖는 작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뒷모습만을 사실적으로 그린 ‘익명인’ 연작을 선보인다. 우산을 쓰고 가는 여인의 뒷모습, 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인의 뒤통수, 한반도 지도 위에 나열된 남녀노소의 다양한 뒷모습은 하나같이 어깨가 축 처져 있다. 익명과 소외의 삶을 사는 도시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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