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민사고 아이들의 방학에 떠나는 해외여행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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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해외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지?”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머니(Money)요”라고 말했지만 농담이라는 듯 서로 키득거렸다.

“돈도 중요하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족과 함께하는 마음이야.”

지난달 30일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강원 횡성군 안흥면)에서 1학년 ‘민족 1반’ 학생 16명에게 방학 중 가족 여행 계획을 들어봤다.

‘뭉그니의 배낭여행 따라하기’를 내는 등 여행전문가로 유명한 이 학교 강문근(40·지리) 교사와 함께했다.

○나를 바꾼 가족 여행

해외 가족 여행? 하지만 민사고 학생들의 첫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돈만 주시면 되는데….” “아빠도 엄마도 바쁘세요.” “시간이 없어요.” “꼭 가족과 함께 가야 하나요?”

학생들은 일상에서 영어만 사용하는 학교의 ‘EOP(English Only Policy)’ 제도 덕분에 낯선 이국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강 교사는 “청소년이 가족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성장에 따른 당연한 반응인데, 부모가 여행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일방적으로 장소를 정하고 지시하면 더욱 그렇다”며 “가족과 함께하는 이상적인 여행은 아이가 계획을 짜는 ‘매니저’, 부모는 비용을 지불하는 총무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가족 여행에 대한 추억을 새기고 있었다.

과학자가 꿈이라는 권희연(16) 양은 미국 서부와 캐나다를 1주일 예정으로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희영이네는 어릴 때부터 방학 때면 여행을 자주 다녔다. 아버지의 취미가 여행과 사진 촬영인 덕분에 영국 프랑스 중국 호주 등 10여 개국을 함께 여행했다.

“2001년에는 여동생과 둘이서 미국 동부를 다녀왔습니다. 아이비리그가 있는 도시를 방문하면서 언젠가는 이 캠퍼스를 밟겠다는 꿈도 키웠습니다.”

권 양은 이번에는 미국 서부에서 장엄한 대자연의 숨결과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의 또다른 모습을 동시에 체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혜인(16) 양은 치과 의사이자 여행광인 아버지를 따라 북유럽에서 1개월을 보냈고, 태국은 1년에 2, 3번씩 갔다. 그는 “특히 외국 관광객이 많은 태국에서 유럽과 아시아 문화를 두루 접했다”며 “외국어와 국제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일본을 여행한 이찬수(16) 군은 희망 여행지로 푸에르토리코를 꼽았다. 그는 “남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다”며 “중남미 바다와 이국적인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고 밝혔다.

○가족을 생각하는 여행

이들이 생각하는 가족 여행은 무엇일까?

김은빛나래(16) 양은 가족 여행을 ‘낯선 곳에서의 공통된 체험을 통한 가족 간 의사 소통의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언니가 고3이에요. 입시 준비 때문에 힘든데 멀리 갈 수 없잖아요? 언니에게 방해가 안 되면서 기분도 바꿀 수 있는 홍콩 1박 3일 여행을 생각하고 있어요.”

경제나 경영 부문을 전공하고 싶다는 황유정(15) 양은 “언니가 외국어고에 다니는데 둘 다 입시 때문에 당분간 해외 여행은 어려울 것 같다”며 “잠시 여행을 ‘예금’ 했다 대학에 진학하면 ‘이자’를 붙여 찾아 쓰겠다”고 밝혔다.

황소희(16) 양은 2003년 중학교 2학년 때 가족이 함께했던 이국적인 러시아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고교 입학 기념으로 가족 여행을 계획했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했어요.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동유럽으로 이동하면서 가족과의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들은 낯선 세계로의 여행을 새로운 경험과 발전을 위한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송승우(16) 군은 4박 5일 인도행을 계획하고 있다.

강 교사가 “인도?” 하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스 월드가 많이 나온 나라여서 가보고 싶습니다. 여자 친구들이 눈도 크고 예뻐요.”

눈 큰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는 송 군은 기독교 계통의 초등학교 때 인도로 선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 타지마할 사원도 다시 보고 싶단다. 박태범(15) 군의 꿈은 남다르다. 사회운동가를 꿈꾸고 있는 그는 미얀마를 가보고 싶어 했다.

강 교사는 “무엇보다 청소년 시기에 여행에서 느낀 새로운 것에 대한 충격과 추억, 자극은 오랜 기간 사라지지 않는다”며 “마음에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강조한다”고 말했다.

글=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서민경(인하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강문근 교사가 추천하는 기간별 해외여행지▼

강문근 교사의 추천을 받아 가족과 함께 소통도 하고 교육적 효과도 얻을 수 있는 해외 여행지를 소개한다. 강 교사는 40여 개국을 다녀온 ‘여행 마니아’다.

1박 3일

○일본 도쿄 또는 중국 상하이

금요일 밤에 떠나 현지에서 하루만 자는 ‘올빼미 일정’에 도전해 볼 만하다. 도쿄 올빼미 여행, 상하이 몽 여행 등으로 직장인들 사이에서 꽤 알려진 프로그램이다. 홍콩 마카오를 둘러보는 1박 3일 일정도 있다.

도쿄에 아이와 함께 간다면 아카몬(赤門)으로 유명한 도쿄대나 저패니메이션의 메카 ‘지브리 스튜디오’에 꼭 가보자. 국내에서 미리 예약하고 가야 한다. KTB 대한여행사에서 예약할 수 있다. 02-585-1191

상하이에서는 21세기 중국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가슴을 뜨겁게 하는 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다. 상하이에는 오래된 가옥들도 많이 남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임시정부 청사 주변이다. 골목길을 걸어보면 과거가 느껴진다. 반대로 현대적인 모습을 보려면 신천지에 가면 된다. 카페 식당 유흥업소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코스모폴리탄’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밤이 깊어지면 흥청망청하므로 학생들은 일찍 다녀오는 게 좋다.

3박 4일

○싱가포르 또는 베트남 하노이(하롱베이)

싱가포르는 편안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볼거리가 많아 초등학생을 둔 가족이 가볼 만한 곳이다. 과학박물관, 동물원, 새 공원 등이 동심을 자극하고 공원들도 환경친화적이다. 인도계나 이슬람계가 모여 사는 지역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문화적 체험 코스다. 말레이시아 말라카나 쿠알라룸푸르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일정을 짜면 좋다. 특히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는 기분은 분단 국가에 사는 우리에게는 색다른 경험이다.

베트남 하노이에는 한국 항공사들이 취항하고 있다. 항공기가 밤에 떠났다가 새벽에 돌아오기 때문에 휴가 기간을 알뜰하게 쓸 수 있다. 하노이 현지의 여행사에서 하롱베이까지 1박 2일이나 2박 3일 투어를 이용할 수 있다. 수천 개의 섬이 보석처럼 흩어져 있는 하롱베이는 가족들과 함께 요트형 배에서 밤을 지내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가기 전 영화 ‘인도차이나’를 보거나 ‘호찌민 평전’을 읽으면 이해의 폭이 훨씬 커질 것이다.

1주일

○‘베트남 하노이(하롱베이)+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또는 중국 양수오(陽朔)

최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동남아 최고의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전에는 태국을 통해서 육로로 갔지만, 요즘에는 베트남을 거쳐 항공편으로 많이 간다. 하롱베이와 앙코르와트를 함께 묶으면 유적지와 휴양지를 함께 여행할 수 있다.

영어에 익숙하면 앙코르와트에서 영어 가이드를 고용해 보자. 현지 주민이 가이드를 하는 덕분에 숨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일출과 일몰을 보지 않는 것은 앙코르와트의 가장 멋진 모습을 놓치는 것이다. 유적지는 알면 더 잘 보인다. 앙코르와트 대신 베트남 북서부 중국과의 국경 지대에 있는 사파를 방문하는 것도 좋다. 이곳은 소수 민족이 사는 곳으로 계단식 논과 자급자족 형태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하노이에서 밤 기차가 운행되며 현지에서 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중국 광시(廣西) 성 구이린(桂林)은 천하제일경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지만 인구 60만 명의 도시다. 아시아나가 취항하고 있다. 여기서 버스로 남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양수오는 문명의 때가 덜 묻은 곳이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 지역을 다닐 수 있고 유유자적할 이들에게 아주 좋은 곳이다. 양수오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자전거 지도가 있다. 근처 마을 곳곳에서 정기시장이 서기도 한다.

9박 10일

○중국 윈난(雲南) 성 또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윈난 성의 성도(省都)는 쿤밍(昆明)이다. 중국은 최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지만, 윈난 성은 변화가 더디다. 쿤밍∼다리(大理)∼리장(麗江)∼샹그리라를 왕복하는 여정은 오가는 중국인 여행자들을 만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준다.

다리에서는 여름철 횃불 축제가 열린다. 리장은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델이 됐던 곳으로 야경이 아름다운 고풍스러운 도시다. 샹그리라는 티베트인들이 사는 도시다. 리장에서 자전거를 빌려 소수 민족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우리 교과서의 사회 과목에는 유럽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주마간산으로 여러 나라의 도시를 보는 것도 좋지만 교통비와 숙박비가 비싸 경비가 만만치 않다. 런던에서 파리는 야간버스, 파리에서 로마는 야간기차로 이동하면 시간과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주제는 박물관 탐방으로 잡는 게 좋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가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최근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금요일 밤에 출발해 다음 주 월요일 새벽에 오는 9박 10일 패턴의 여행이 인기다.

2주일

○스페인 남부+모로코

스페인 남부에서 페리를 타고 두 시간이면 모로코에 도착한다. 프랑스 식민 통치의 여파로 프랑스적인 것과 아랍적인 것이 묘하게 섞여 있는 곳이다. 마라케시라는 도시에서는 3박 4일 사하라 사막을 다녀오는 투어에 참가할 수 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찍은 곳도 지나간다. 사막은 여름이 제격으로 여름밤의 사막은 파라다이스다. 오래된 영화지만 ‘카사블랑카’도 보면 좋다. 현재 카사블랑카는 영화처럼 그렇게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인구 500만 명의 북적거리는 모로코 최대 도시이기 때문이다. 신발끈 여행사(www.shoestring.co.kr)에서 숙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꾸불꾸불한 전통 아랍풍 도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은 페스. 언덕에 있는 도시로 길이 좁아 당나귀가 유일한 운송 수단이다. 반대로 마라케시는 평지에 지어진 성채 도시. 그러나 미로는 마찬가지다. 밤에 시내 한복판 광장에서 먹을거리 장터가 선다.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 코르도바 등 스페인 남부 도시들은 안달루시아 지방에 속한다. 우리가 가진 스페인에 대한 인상은 대부분 안달루시아에 관한 것이다. 수업시간에 지중해성 기후와 올리브 나무가 자주 언급된다. 넓은 올리브 밭과 뜨거운 햇살에서 스페인은 축복받은 나라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강문근 교사 diego@minjok.h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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