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나는 무적의 솔로”… 연말 당당하게

  • 입력 2004년 12월 9일 16시 23분


코멘트
《얼마 전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나는 무적의 솔로부대다’라는 제목의 그림이 화제가 됐다.

공주대 만화예술학과에 다니는 정선영 씨가 그려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 홈피에 올려놓은 이 그림 얘기는 도깨비 뉴스(www.dkbnews.com)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자취하던 시절, 혼자 걷다가 문득 주위를 보니 온통 행복해 하는 커플들뿐이었다는 경험담이 반영된이 그림은 연말을 맞아 옆구리가 시린 솔로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기사에는 ‘외로움에 찌들려 담담해진 저 솔로의 표정이 가슴 아프다’는 공감의 글과 ‘솔로천국, 커플지옥!’ 등 커플들을 저주하는 장난기어린 답글 등이 달렸다.작년 이맘때도 그랬다.


홀로 계단을 올라가는 한 솔로 여성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인다. 커플들에겐 천국인 크리스마스는 솔로들에겐 더욱 우울해지는 시간. 움츠리지 말고 당당히 솔로들끼리 모여 즐겨보자. 위의 그림은 공주대 만화예술학과 정선영씨가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그림.

디지털 카메라 포털 디씨인사이드(www.dcinside.com)에서 시작된 솔로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선전포스터를 패러디한 그림과 함께 ‘만국의 솔로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로 인기를 끌어 각종 포털 사이트에 솔로부대 클럽을 만들어냈다.

솔로들에게 가장 힘든 시간,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또 돌아왔다.》

○ 연애 권하는 사회, 솔로는 힘들다

잘나가는 커리어우먼 김모 씨(34). 비즈니스 미팅에서 처음 만난 40대 남성과 한참 일 얘기를 하는데 상대 남성,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남:(미소지으며) “결혼 하셨지요?” 김 씨: “아뇨, 아직 안했습니다.”

남:(당황하며) “그럼 애인은 있어요?” 김 씨: “아뇨.”

남: (걱정스러운 표정에 갑자기 반말까지 쓰며) “큰일이네. 집에서 걱정 많이 하시겠네.”

커플이 아니면 살기 힘든 사회다. 밸런타인과 화이트 데이는 물론이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빼빼로, 다이어리, 허그 데이에다 커플이 아닌 사람들이 자장면을 먹으며 각오를 다지는 블랙 데이까지. 매달 14일은 연애와 관련된 날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만난 지 22일을 기념하는 ‘투투 데이’나 38일을 기념하는 ‘38광땡 데이’에 여친에게 무슨 선물을 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인터넷에 올린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쌍의 범람’은 현대의 병적 징후라고 말했다. 쌍에 대한 집착이 외로움을 의연히 견딜 힘을 앗아가기 때문이라고.

여성주의 저널 ‘일다’(www.ildaro.com)는 솔로부대의 열풍이 불었던 작년 말 ‘커플 권하는 사회’라는 글을 통해 이는 ‘혼자’를 용납하지 않고 소속감과 일체감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집단문화와 관계있다고 지적했다.

한 30대 초반 남성은 “정작 나는 괜찮은데 다들 ‘무슨 문제 있는 것 아니냐’며 여자를 소개시켜 주려고 안달”이라며 “솔로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외로움 자체보다는 혼자 영화보고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느껴지는 주위의 시선”이라고 말했다. 솔로들의 절망감은 크리스마스 때면 절정에 달한다. 회사원 이모 씨(35)는 솔로로서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이냐고 묻자 “솔로가 무슨 조선시대 계급이냐”며 버럭 화를 냈다.

○ 당당하게 모여 즐기자

그렇다고 전통적인 방법인 ‘커플 방해하기’와 ‘집에 콕 처박히기’를 고수하며 이 시기를 보낼 것인가. 당당하고 즐겁게 지내는 솔로들이 늘고 있다.

교육컨설팅 업체의 젊은 최고경영자(CEO) 고승재 사장(28)은 “커플인 직원들도 밤늦게까지 남겨 일을 시키며 고통을 함께하고 회사의 비전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웃더니 “사실은 솔로인 직원들끼리 영화나 공연을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JW메리어트호텔의 김지은 홍보실장(34)는 “24일은 당직이라 일해야 하고 25일에는 얼마 남지 않은 재즈 댄스 공연을 연습할 것”이라며 평소와 다름없는 자세를 보였다.

다른 솔로들은 무엇을 할까? 네이버 카페 중 솔로들의 모임인 ‘솔로가 더 멋지다’의 회원 을 대상으로 1∼6일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보았다. 응답자 121명 가운데 ‘솔로인 친구들끼리 모여 파티를 연다’는 대답이 51명(42%)로 가장 많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가 28명(23%), ‘커플들 보기 싫어 집에서 절대 나오지 않겠다’는 22명(18%), ‘그때까지 죽어도 커플이 되겠다’가 20명(16%)이었다.

○ 솔로들의 파티법

흔히 솔로들끼리의 모임이 칙칙하다고 생각하지만 파티문화가 확산되면서 이제는 특별한 날 솔로들끼리 재미있는 파티를 여는 것이 대세.

회사원 손혜림 씨(27·여)는 솔로인 여자친구 5명이 전망 좋은 남산의 특급호텔 방을 예약했다. 손 씨는 “커플들이야 어디든 같이 있기만 해도 기쁘겠지만 솔로 파티는 자칫 궁상맞아지기 쉬워 일부러 좋은 호텔을 예약했다. 커플보다 더 즐겁게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파티 플래너 겸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박재은 씨에게 어떻게 하면 솔로들끼리 재밌게 놀 수 있을까를 물었다. 그는 “솔로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함께 몰두할 수 있는 테마를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요리파티’라면 각자 1만원 등 정해진 금액으로 장을 봐오는 것이 파티 준비물. 휴대용 가스레인지 몇 개를 준비해서 참석자들끼리 편을 나누어 요리를 해먹고 즐기는 것이다. 남녀 솔로들이 같이 모였을 때 좋은 방법이다.

남자들끼리의 파티에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액션 영화의 밤’을 추천했다. 시원한 액션 영화 2, 3편을 빌려 소리를 질러가며 밤새 맥주를 마시는 것.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

여자들끼리라면 잠옷 차림으로 하는 파자마 파티도 재미있다. 파자마 파티가 너무 어린애들 같다면 란제리 파티는 어떨까.

박 씨는 “평소에 입고 싶었지만 입지 못한 과감한 슬립, 나이트가운 등을 입고 밤새 친한 친구끼리 수다를 떨며 실컷 웃고 즐겁게 보내라”고 조언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