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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21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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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예술의 전당 지하 연습장 문틈으로 귀에 익은 선율의 영어노래가 흘러나왔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니 파란 눈의 배우들이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춤과 노래에 열중하고 있다. 마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연습장을 통째로 옮겨온 듯하다.
이곳은 24일부터 대전을 시작으로 서울 대구 부산을 도는 한국 공연투어를 위해 뉴욕에서 내한한 뮤지컬 ‘캬바레’ 브로드웨이 팀의 연습 현장. ‘캬바레’에 출연한 배우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거쳐 구성된 이 팀은 한국 공연을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간다. 주인공 엠씨 역과 샐리 역의 밴스 애버리와 카트리나 요키는 ‘캬바레’의 단역으로 출발해 언더스터디(주역이 공연을 하지 못할 경우의 대역배우)를 거쳐 주역으로 무대에 섰던 실력파들. 배우들은 탄탄한 춤과 노래 실력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캬바레’는 1966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30년 넘게 사랑받은 작품이다. 배경은 1930년대 나치 치하 베를린의 카바레 ‘킷캣 클럽’.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진행자인 킷캣 클럽의 엠씨, 카바레의 가수 샐리와 그녀의 애인인 미국인 소설가 클리프 등을 중심으로 나치의 광풍이 불어오는 시대상과 이에 휩쓸려가는 소시민들의 삶을 담았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감독인 샘 멘데스가 연출을 맡아 1993년 공연한 버전이 선보인다. 그는 1930년대의 암울한 정치상황에 매춘과 마약, 동성애 등 퇴폐와 향락에 탐닉했던 카바레 풍경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재미와 의미가 조화된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조연출자 스티븐 클리어는 “멘데스 버전에는 연극적 요소를 강화한 점이 특징”이라며 “관객들은 연극도 보고 뮤지컬도 즐기는 두 가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공연처럼 하는 런스루(run-through) 연습. 1막은 킷캣 클럽을 찾아준 손님들에 대한 엠씨와 동료들의 환영인사로 막이 올랐고, 2막은 텅 빈 무대에서 엠씨가 손님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배우들은 시종일관 ‘실전’처럼 연습에 열중했다. 2막 끝부분에서 클리프가 샐리와 다투며 뺨을 때릴 때는 진짜 ‘철썩’ 소리가 울릴 정도였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춤, 노래, 연기뿐 아니라 악기까지 척척 다루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오케스트라 석에 앉아 색소폰, 트럼펫, 바이올린, 첼로 등을 연주하던 배우들은 자기 순서가 돌아오면 잠시 악기를 내려놓고 춤과 노래를 선보였고 땀 닦을 새도 없이 자리로 돌아와 다시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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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씨 역의 애버리는 1막 중간에 댄서들과 ‘머니(Money)’라는 노래를 부르며 에로틱한 춤을 추는 등 관능적 매력과 기이한 카리스마로 눈길을 끌었다. 연습이 끝난 뒤 그는 “내 역은 관객들을 뮤지컬로 이끄는 안내인 역할”이라며 “‘캬바레’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 배우들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작품인 만큼 한국 관객들을 확실히 사로잡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 공연 일정 △대전 충남대 정심화홀(24∼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7월 3∼16일) △대구 오페라하우스(7월 20∼25일) △부산문화회관(7월 27일∼8월 1일) 3만∼13만원. 1544-1555, 1588-7890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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