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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23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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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강제 소환되어 옥살이를 하다가 1969년 사면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후 파리로 돌아가 동양의 서예와 문인화 정신을 기반으로 서양의 콜라주 기법을 혼용해 환상적 기호로 개성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그런 그에게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새로운 화제(畵題)를 던졌다. 고암이 마지막 예술 혼을 불사른 군상(群像) 그림이 시작된 것이다.
한지에 먹으로 그려진 수십, 수백, 수천의 인간들. 한번의 붓놀림이 곧 한 사람이 되는 일격의 운필이 무한히 반복되어 나타난 군상 연작은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고암은 생전에 "그동안 나의 그림은 추상이었으나 1980년 5월의 광주사태가 있고 나서부터 사람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는 구상적 요소를 그림 속에 가져왔다“며 ”군상 연작은 모두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민중 그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서울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이 고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갖는 기획전은 군상 그림들 50여점을 모아 이뤄지는 특별전. 고암이 태어난 날인 2월2일(음력 1월12일) 시작돼 6월27일까지 계속된다. 한, 두 사람을 그린 작은 그림들부터 군상이 빽빽한 100호짜리 그림까지 모두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다.
고암의 부인인 박인경(朴仁景· 79) 관장은 “고암은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만지는 것은 물론 꿈꾸는 것까지 놓치지 않았던 그림 욕심쟁이였다”며 “남녀노소, 동 서양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고암의 그림이 분열의 이 시대에 작은 구원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11월 대규모 고암 회고전을 기획하고 있다. 02-3217-5672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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