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정]슈퍼우먼, 슈퍼아빠랑 바통터치!

  • 입력 2003년 11월 13일 19시 14분


《좋은 아빠 되기 운동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아빠들은 벌써 피곤하다. 아내의 가사도 도와야 하고 아이들과도 잘 놀아줘야 하는 요즘 아빠들. 그 긴긴 시간 아이의 교육을 위해 외로움을 달래는 ‘기러기 아빠’ 역시 대단한 아빠임에는 틀림없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초능력을 발휘하던 슈퍼우먼의 시대는 가고 가정에서는 좋은 아빠,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직장인이 돼야 하는 ‘슈퍼아빠’의 시대가 온 것일까? ‘보통아빠’ 4명이 얘기를 나눴다.‘》

▽ 나! 보통남편

정태옥=10년 전 첫애 낳을 때 6개월간 아내와 병원에 다니며 라마즈분만법을 배웠지요. 둘째는 미국 유학 중 낳았는데…요즘 남편들 가정에 잘하는 게 여자들 드세져 그런 게 아닌가요? 남자들이란 원래 밖으로 돌아다니며 술 마시는 것 좋아하는데…아내 무섭죠, 눈 치켜뜨면…전 아내를 ‘싸움닭’이라 불러요.


아빠는 피곤하다. 능력있는 직장인, 좋은 아빠의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슈퍼아빠’의 시대. ‘보통 아빠’ 4명이 ‘슈퍼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김부식, 김윤호, 정태옥, 전승철씨. -박영대기자

김윤호=왜요? 전 아내를 ‘요정’이라 불러요. 그래서 제 PC통신 대화명도 ‘요정남편’이죠.

전승철=결혼 초기 아내의 지지를 받는 완벽한 가정을 꿈꿨죠.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어요. 3년 전 아내가 중국사업부로 발령 나는 바람에 두 아이를 제가 돌봤어요. 아이들을 낮에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녁엔 집에 데려왔어요. 처음엔 자신 있었는데 한두 달 지나자 지치대요. 아내의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죠.

김부식=고참여사원과 결혼했어요. 아내는 직장생활을 오래해 집안일 못해요. 결혼 전 혼자 살면서 밥을 해먹어 봤어야죠. 결혼 초기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았죠. 3년 뒤 애가 생겨 어머니와 살게 됐어요. 시어머니가 있는데도 애 하나 낳고 둘 낳으니 배 째라는 식이에요. 둘이 벌어도 월급쟁이 수입이 빤하니 아내에게 미안하고 기가 죽어요.

▽가정과 직장 사이

김윤=청소기, 세탁기는 제가 돌려요. 또 아이를 밤 9시에 샤워시키고 책을 읽어줍니다. ‘슈퍼우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내에게 그 ‘슈퍼’란 말을 떼어주고 싶어요. 집에 들어가면 저도 피곤하지요. 그러나 어차피 가족을 위해 해 주는 것, 기쁘게 하자고 결심해요. 책 읽어주기 귀찮아도 일부러 글자가 많은 책을 골라 읽어줄 때도 있어요. 대학 때 연극했던 실력을 발휘해 실감나게 읽어주면 아이가 “까르르” 하며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게 바로 저의 활력소지요.

전=평일엔 밤 10시, 11시 퇴근이니 아무래도 많이 놀아줄 수 없어 주말에 집중적으로 놀아줍니다. 토요일엔 둘째 데리고 첫째 학교에 가 기다렸다가 셋이서 놀러가요. 아내는 그 시간 쉬고.

김부=집사람 늦게 퇴근하면 제가 오후 7시반에 들어가요. 어머니는 다 치우고 누워계시죠. 아이 목욕과 숙제 시키느라 밤 10시까지 허리를 못 펴요. 아내가 술이라도 마시고 오면 진짜 화나죠. 육아휴직 좋죠. 그러나 신청하면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걸요. 제게 한 달만 휴가를 줬으면 좋겠어요. 절에라도 가 좋아하는 책 실컷 읽을 수 있게.

우리사회에서 좋은 아빠 되기 힘들어요. 직장에서 정년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어제는 회사의 문화동호회 모임에 갔다 퇴근하니 밤 12시예요. 그때 노트를 꺼내 한 시간 동안 다시 계획을 정리했어요. 그래도 집안이 편안하려면 노력해야죠. 가정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정=경상도 산골이 고향인 저와 서울 강남 토박이인 아내는 나이는 여섯살 차이지만 정서적으로는 한 세대 차이가 나요. 아내는 너무 바빠 집안일은 아줌마가 도맡아 합니다. 저도 바쁘지만 아이교육은 남이 대신할 수 없잖아요. 교복 사고 전학서류 준비하고 담임선생님께 전화하는 것도 제 몫이죠. 학부모 모임에도 나가요. 그랬더니 토요일 근무해야 하는 저를 위해 다른 엄마들이 현장학습 때 우리 애를 데려가 줘요.

▽나? 슈퍼아빠

김부=늦둥이가 생기면서 아무래도 큰애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해서 인터넷 육아일기사이트에 들어가 꼬박 50일간 일기를 썼습니다. 또 한달 동안 매일 2시간씩 가르쳐 성취도평가에서 평균 85점을 95점으로 올려놓았어요. 이젠 아이의 비만관리를 위해 15층까지 오르내려야겠어요. 애 혼자 하라면 하나요. 같이 해야죠. 어디까지 아빠노릇을 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발 담갔으니 해야지요. 스킨십 위해 애 등을 긁어주는데 애는 제가 늙으면 효자손 사주겠다고 해요.

전=아내는 아이들 맘을 몰라요. 제가 아홉살 큰애 미장원에 데리고 다니며 머리 깎여요. 제가 신발도 예쁜 것 훨씬 잘 골라요. 아내는 그게 스트레스인가 봐요. “네가 잘하면 네가 해”라는 식이죠.

정=큰애를 가르치다 모르면 자꾸 윽박지르게 돼요. 그리고 “나는 안 좋은 아빠구나” 후회하죠. 18개월짜리 작은애와 놀아주려하는데, 30분 놀아주면 재미가 없어요. 그럼 “아줌마랑 놀아라” 하고 포기하죠. 신문 보면 또 어찌나 달려드는지. 그래도 주중엔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이 기다려져요.

김윤=좋은 아빠가 되는게 꿈이었어요. 아이를 1등 만드는 것은 부모의 욕심이고 아이를 행복하게 해줘야죠.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어쩌다 산이랑 수영장에 간 것이 생각나요. 아이들에게 개집 만들어주시던 것도. 시간보다는 정성이겠죠.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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