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아이템]“나는 새긴다, 고로 존재한다”

  • 입력 2003년 9월 25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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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예술가 김건원씨의 작품 사진제공 김건원씨

문신예술가 김건원씨의 작품 사진제공 김건원씨

문신(Tattoo)은 보디 아트 (Body Art)인가, 혐오의 대상인가.

문신이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조직폭력배들이나 병역 기피를 위해 문신을 새긴 청년들이 검거되어 TV에 나올 때마다 문신이 뒤덮은 그들의 몸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축구선수 안정환의 팔에 새겨진 문신은 20, 30대 사이에서 패션 문신이 대중화하는 데 한몫했다.

국내에서 문신은 공식적으로 ‘불법’ 행위. 그러나 최근 일군의 문화인들이 문신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문신예술가(Tattooist)’ 김건원씨(28)가 불법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말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 계기다.

만화가 박재동, 영화배우 방은진, 이동연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장,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대표, 김정란 상지대교수 등 문화예술인 20여명은 8일 ‘타투 법제화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19일 후원의 밤 행사를 가졌다. 가수 DJ DOC와 신해철 윤도현 이상은 이적 김진표 쿨, 영화배우 류승범 안재욱 김민선, 만화가 원수연,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등도 문신의 법제화를 촉구하는 탄원서 제출과 서명에 참여했다.

● “이 땅에 문신을 허하라”

사진제공 김건원씨

김건원씨는 영화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의 문신분장을 맡았고 프랑스 타투 컨벤션, 일본 ‘옐로 블레이즈’ 스튜디오에 게스트 아티스트로 초청받기도 했던 문신예술가. 그에게 문신을 받았던 사람이 6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김씨도 보건단속에 의한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지난달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 받았다.

문신 관련 법규가 없는데도 문신이 불법의료행위가 된 까닭은 영구화장을 의료행위로 규정한 92년의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 김씨측은 “문신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는 보건법의 억지적용은 문신예술가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되레 비위생적인 무면허업소의 양산을 부추긴다”면서 항소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문신 법제화 추진위원회는 허가제 등 문신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는 입법청원운동도 계획하고 있다.

● 문신을 왜 하나?

신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문신을 새기려는 사람들의 동기는 뭘까.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28·음악인)은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지만 팔에 문신을 새겼다”면서 “처음엔 문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죽을 때까지 문신을 몸에 가져간다는 그 영원성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조현설 고려대 민족문화원 연구교수는 “문신은 때로 일탈적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자기만족을 느끼게 하거나 심리적 불안감을 지워주는 장치가 된다”면서 “어떤 사람들에게 문신은 자신들을 기성의 윤리 안으로 동일화하려는 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상징적 기호”라고 분석했다.

반면 97년부터 문신예술가로 활동해온 김건원씨는 “문신을 새기는 사람들의 가장 큰 동기는 몸을 통한 자기표현이며 영원성에 대한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선택해서 태어난 몸이 아닌데, 눈 코 입처럼 평생 가는 신체의 일부분을 내 손으로 선택해 영구적으로 갖는다는 문신의 컨셉트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는 사람들이 과시욕 혹은 피학적 욕망으로 문신을 한다는 오해가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주관이 뚜렷하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왼쪽 팔과 등, 허리에 문신을 새긴 영국 축구스타 베컴 (왼쪽)과 문신 애호가로 유명한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 AP

● 저항문신, 패션문신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문신은 알프스에서 냉동된 채로 발견된 5000년 전 주검의 문신이다. 4000여년 전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문신은 발견된다. 사회마다 문신의 기능은 다양하지만, 주로 주술적 기능, 종족과 신분의 표지, 심미적 기능을 지녀왔다.

문신이 부정적 이미지를 갖기 시작한 것은 유대 기독교 혹은 중화적 전통이 문화의 중심을 형성한 중세를 거치면서부터. 노예, 이방인에 대한 형벌로 주로 쓰였으나 19세기부터 선원과 군인들을 중심으로 문신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문신=조직폭력배’의 이미지가 성립된 것은 일본 야쿠자의 문신 때문. 야쿠자들은 용기와 의리의 증거로 문신을 새기기 시작했으며 18세기 중반 일본에 소개된 ‘수호지’에서 무법적 영웅들이 용 호랑이 꽃 문신으로 온몸을 장식했다는 서술에 자극받은 면이 크다.

20세기 초반 문신이 주로 범죄조직 구성원이나 헤비메탈을 하는 전위 음악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까닭에 대해 조현설 연구교수는 “문신은 금지의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질서 있는 사회에 저항하고 문제제기를 던지는 일탈자의 표상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베컴 같은 스포츠 스타, 연예인들을 통해 문신의 부정적 이미지가 누그러지고 패션 문신이 급속하게 퍼지면서 문신의 사회적 상징도 점차 변화하는 추세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에서 문신을 터부시해왔던 대기업에서도 문신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고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포드자동차와 보잉사는 시니어 경영진을 포함한 직원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문신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월마트는 문신을 드러내는 것을 금해왔으나 불쾌하지 않은 수준의 문신은 보여도 괜찮다고 방침을 선회했다. 애플 컴퓨터는 매킨토시 애플의 로고를 어깨에 새긴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의 문신사진을 ‘괴짜의 천재 과학자들이 모여 있다’는 회사 이미지 홍보를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 프로페셔널 타투이스트 연합에 따르면 현재 문신을 한 미국인은 10명 중 1명꼴. 미국 뉴저지의 기업윤리 컨설턴트 홀리 잉글리시는 “현대사회에서 문신은 종업원들이 대기업 근무환경과 고객과의 관계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성을 발산하고 존엄과 독립성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건강한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 문신은 예술인가?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는 “예술이 주술에서 출발했듯 문신도 금기의 영역을 드나드는 주술사처럼 이전에는 자신이 손댈 수 없는 영역이었던 몸을 개성적인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현실적 영역에 초월적 영역을 가져오는 예술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설 연구교수도 “문신은 아주 오래된 인간의 문화이며 문신의 여러 기능 중 미적 기능이 현대적으로 확산된 것이 오늘날의 예술 문신”이라며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인간의 심미적 욕구를 신체 위에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신은 예술”이라고 말했다.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문신관련 설명회를 수차례 열고 인터넷 사이트 (www.beegy.com)를 개설한 김건원씨는 “문신은 인격을 지닌 유일한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보통의 예술은 작가의 개인적 이야기지만 문신은 동기 자체를 의뢰인이 가지고 온다. 창작자는 작품을 다시 볼 수 없어도 의뢰인은 작품을 자기 몸으로 받아 평생 갖게 되는 것이다. 소장하는 사람이 갖고 있다가 죽으면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신은 인격을 지닌 유일한 예술이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패션 문신을 하는 ‘타투숍’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중국 일본에도 문신은 이미 대중화되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는 허가제로 문신을 허용하고 있고 뉴저지주에서도 4시간이상 적십자에서 위생교육을 받고 2000시간 이상 타투이스트 교육을 받으면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문신 법제화 추진위원회 대표 장군씨는 “문신뿐 아니라 염색과 피어싱 등을 통해 몸이 개인 표현의 양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라면서 “질 높고 안전한 자기표현을 위해서라도 문신 법제화를 통해 사람을 중시하고 위생관념과 테크닉의 완성도, 미술적 소양을 갖춘 문신예술가들의 활동 공간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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