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경란 자전적 에세이집 '악어이야기' 펴내

  • 입력 2003년 9월 2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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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일본 도쿄에서부터 시작됐다. 악어 ‘제이크’를 본 사람들은 그 이후 삶이 어떤 형태로든지 달라졌다는….

소설가 조경란(34)도 어느 날, ‘제이크’를 만났다. ‘제이크를 발견한 순간은 어쩌면 일종의 터닝포인트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제이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고 싶을 때, 다른 삶을 꿈꿀 때 내 내면의 힘이 불러내오는 상징적인 존재 같은 것?’

악어를 만난 뒤 작가는 최근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마음산책)에 지금껏 털어놓지 못했던 내밀한 가족사와 자신의 생활공간을 소곤소곤 담았다.

조경란은 "악어 제이크를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다. 기적이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 아는 것과의 만남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산문집을 쓸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박주일기자

● 악어와 코끼리

조경란에게 ‘제이크’를 데려다 준 사람은 출판사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 “일본 ‘TV도쿄’에서 2001년 방영한 25부작 애니메이션 ‘전설의 악어 제이크’를 본 순간 곧바로 조경란이 떠올랐죠.” 조경란이 지난해 발표한 자전소설 ‘코끼리를 찾아서’와 ‘…제이크’에 맞닿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일면식도 없던 작가에게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고 싶다”고 연락했다.

25부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전설의 악어 제이크가 아내와 이혼을 앞둔 보석상인, 옛 애인을 우연히 만난 보험회사원, 흥청망청 놀고 다니는 ‘백수’ 등 25명의 사람 앞에 느닷없이 나타나 그들의 삶을 바꿔 놓는다. 악어 대신 코끼리가 등장하는 조경란의 소설 ‘코끼리를 찾아서’와 닮은 꼴.

‘코끼리를…’의 주인공은 헤어진 애인이 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안고 잠이 든다. 잠결에 셔터를 눌렀는데, 사진에 코끼리가 찍혔다. 이후 그는 슬픈 일이 생기면 사진 속 코끼리에 얼굴을 부비며 운다. ‘이따금씩 집이 꿈틀, 움직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아, 코끼리가 왔구나, 짐짓 생각하는 것이다.’

처음 ‘…제이크’ 비디오테이프를 넘겨줬을 때 “난 소설 이외의 글은 쓰지 않는다”며 사실상 원고청탁을 거절했던 작가는 애니메이션을 다 본 이튿날 뜻밖에도 “내 얘기를 쓰고 싶다”며 출판사에 전화를 했다.

● 어제는 비, 오늘은 맑음

소설 ‘코끼리를…’에서 짐작할 수 있었던 작가의 삶은 산문집 ‘악어 이야기’에서 또렷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생이란 좀체 화사한 날들은 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성장기, 책상이 없어 밤마다 담요를 망토처럼 두르고 시를 읽던 날들, 식탁에서 써내려간 첫 소설,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친척들…. 만취한 아버지를 피해 하룻밤 모텔에서 밤을 보낸 작가 모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맑고 환했다. 작가는 ‘비가 내려도 난 괜찮아요. 해가 비치면 날씨가 좋은 거죠’라는 비틀스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조경란은 자신의 처지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명료한 자각, 작은 위로가 일상을 견뎌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건 조금 늦게 와도 좋다. 기다리는 동안의 환희에 가까운 고통, 그 애탐과 간절함. 때로는 그 힘이 내 삶의 가장 큰 구심점이 되기도 하니까.’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악어를 만나는 그 순간,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크고 작은 문제를 자각하게 된다. 코끼리는 기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삶에서 악어와 코끼리가 대면하게 되는 날을 조경란은 희망하는 것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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