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성공학]끝도 없는 후회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7시 12분


양창순
한 해를 마감하며 요즘 김 과장의 심사는 몹시 착잡하다. 언제나처럼 올 한 해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았던 일, 즐겁고 기뻤던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그런 일들은 그다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남의 얘기처럼 ‘많았을 것’이라며 엉성한 표현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반대로 후회스럽고 상처입고 아픈 기억은 왜 그리 악착스러운지, 질기게도 머릿속을 헤집는다. 또다시 한해가 가는데 누군들 감회가 없으랴만 그의 경우는 좀 지나치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 일이 이렇게 저렇게만 됐더라도 훨씬 좋았을걸 하며 지나간 일을 곱씹고 후회하는 데 하루 해가 모자랄 지경이다. 반추에 반추를 거듭하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종의 괴로운 의식이랄까.

그 의식은 송년회다 뭐다 해서 모이는 연말 술자리에서 정점에 다다른다. 그렇다고 주사를 부리진 않는다. 그 대신 차곡차곡, 마치 저장이라도 하듯이 술을 마시며 혼자 탄식하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해요.” 그의 아내 말이다.

“살다 보면 괴롭고 마음 아프고 한스러운 일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내가 후회한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도로 없던 일이 되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남편 혼자 유난 떠는 걸 보면 정말 화가 나요.”

유난스럽다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더러 김 과장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끝없이 과거를 반추하는 이유는 현재와 미래가 두렵기 때문이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과거의 나를 반추하며 후회하고 야단치는 쪽이 훨씬 쉽다. 회한은 언제나 탄식과 괴로움을 불러오고, 그 속에 침잠해 있는 동안은 앞날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옹달샘은 한 곳에 고여 있어도 썩지 않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물줄기가 퐁퐁거리고 솟아나고 고인 물은 다시 땅 속으로 흘러 스며들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물과 같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아니다. 물과 같이 끝없이 변화하며 흐르는 존재인 것이다.

한 해를 보내며 감상에 젖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계속해서 과거에 연연하며 반추를 되풀이하다간 자칫 고인 물처럼 되기 쉽다.

무슨 유행가 가사 같지만 과거는 그만 흘려보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두 팔 활짝 벌려 새해, 새날을 맞는다면, 또 누가 아는가. 기적 같은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지. www. mind-open.co.kr

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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