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현장칼럼]6세 영재 황하선군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6시 34분


“나의 천적은 햄스터다. 햄스터는 나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니까”라고 말하는 황하선군(6). 그의 옆에 쌓인 책에는 ‘독파’할 때마다 하나둘씩 붙여놓은 스티커가 눈에 띈다./신석교기자
“나의 천적은 햄스터다. 햄스터는 나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니까”라고 말하는 황하선군(6). 그의 옆에 쌓인 책에는 ‘독파’할 때마다 하나둘씩 붙여놓은 스티커가 눈에 띈다./신석교기자
황하선군을 1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그의 집에서 만났다. 황군은 1996년 4월 20일 오전 8시반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났다.

이승재〓요즘 가장 신경쓰이거나 고민하는 게 뭔가?

황하선〓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나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멀리 떨어져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이라크도 공격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너무 시끄럽다. 힘이 세다 해서 싸우는 건 나쁘다. 나는 미국에 가지 않겠다. 비행기를 타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승재〓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나?

황하선〓아니다. 나는 생물 쪽은 강한데 우주 쪽은 약하다. 쓰기도 약하다. 유치원에서 온양으로 졸업여행을 갔었는데 관찰일기에 쓴 단어(총 21개) 중 ‘스레기통’ ‘단풍입’ 2개나 틀렸다.

같은 유치원의 이○○양은 동료를 칭찬하는 ‘칭찬카드’를 통해 다음처럼 하선군을 평가했다. ‘책또 잘이또 조용이 자업또 잘 안다(책도 잘 읽고 조용히 작업도 잘 한다)’

하선군이 그린 기자들의 일. 왼쪽 맨 위 네모가 기자

이〓생물에 강하다고 하니 묻겠다. ‘천적’이 뭔지 아는가?

황〓어떤 동물이 무서워하는 것이다.

이〓너의 천적은 무엇인가?

황〓햄스터다. 왜냐하면 햄스터는 나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게 하니까…. 아저씨는 누구인데 자꾸 물어보는가?

이〓난 기자다. 신문기자.

황〓(그림을 그리며) 기자들은 이렇게 밖에서 얘기를 듣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전해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전해주고…, 뭐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아니냐(그림 참조).

이〓맞다. 그런데 그림 중 둘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 네모(사람)가 궁금하다. 다른 네모와 달리 두 군데에서 얘기를 듣고 또 두 군데로 얘기를 전해주고 있다. 왜 그 네모만 그런가?

황〓높은 사람이라서 그렇다. 아저씨는 맨 윗줄 왼쪽의 네모다. 신문들은 많은데 내용은 다 똑같다. 히딩크 기사도 다 똑같더라.

하선군은 3월부터 서울 서초동의 ㈜한국영재연구원에 주 1회씩 나가 교육받고 있다. 지능검사 결과 ‘동작성’과 ‘언어성’ 분야에서 균형있게 높은 지수를 나타내며 또래 아이들 중 상위 1%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별됐다.(그림②-1) 비교적 선천적 요인인 ‘동작성’과 후천적 요인인 ‘언어성’ 중 하나가 편향적으로 발달한 동료 A군(그림②-2) 및 B군(그림②-3)과 다르다. A군은 어머니가 책을 많이 읽어주지 않거나 가족간의 대화가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B군은 백과사전 수준의 상식을 갖고 있으나 주어진 과제를 인정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완수하는 규율성,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분석됐다. B군은 지능검사 당시 ‘서로 떨어진 점들을 이어 직선을 만들라’는 요구에 대해 “왜 곡선은 안되고 직선을 그어야 하느냐’면서 반발했다.

이〓텔레비전을 좋아하는가?

황〓신비스러운 일들이 많은 ‘매직 키드 마수리’(KBS2)는 꼭 본다. 9시 뉴스도 본다.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끔찍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추워서 죽었는지, 총알 때문에 죽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개구리 잡으러 갈 때 엄마 아빠와 함께 갈 것이다.

이〓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황〓아침 6시에 일어나 영어 테이프를 30분 동안 듣고, 세계지도 위에 나라들의 경계선을 매직펜으로 그린다. 월드컵 때부터 ‘세계’가 굉장히 궁금해졌다. 그래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는다. 프랑스편 18쪽까지 읽었다. 유치원에는 아침 8시40분, 버스가 늦게 올 땐 8시42분에 갔다가 (오후) 1시40분, 버스가 막히면 1시45분까지 집에 온다. 화 목 금(요일)은 3시에 태권도를 (배우러) 가고, 토(요일)는 11시부터 2시까지 영재학원에 간다.

하선군은시간개념은 정확하다. 오전 6시 기상, 오후 10시 취침 시간을 철통같이 지킨다. 한 번은 어머니가 15분 늦게 깨웠다. 하선군은 “영어 테이프를 듣지 못하게 됐다”고 분통터져 하면서 30분간 울다가 아버지(황용련·43·서울 양재고 교사)에게 혼이 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정서적으로 풍부하고 됨됨이 바르게 자라나기를 바란다. 서울 양재고 사회과목 교사인 아버지 황용련씨(43)는 아들에 대해 정서적으로 풍부하고 됨됨이 바르게 자라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황씨가 지난해 5월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올챙이를 채집하는 과정에서 아빠와 하선이는 아빠가 어릴 적 뛰어다녔던 들판을 같이 달렸고, (친)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빠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 쌀을 생산해 내었던 할머니의 논에서 올챙이도 잡았고, 벼가 자라는 논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쌀(밥)의 소중함을 같이 느꼈다.’

이〓소원은 무엇인가?

황〓곤충들이 죽지 않는 것이다. 죽는 것은 슬프다.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키워보니 금방 죽었다. 거북의 수명은 평균 100년이고 오래 사는 경우 150년이다. 곤충들이 거북처럼 오래 살도록 만드는 곤충학자가 되겠다. 또 엄마가 아프지 않고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이〓어머니를 위해 한 게 뭐 있는가?

황〓전래동화, 과학, 사회, 애니메이션을 모두 읽는다. 한가지 책만 읽으면 멍청이가 된다. 또 엄마 생일선물 사드리려고 10만원을 모아놓았다. 이마트에 가서 보니, 엄마가 입는 브래지어는 1만원부터 5만원까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중 5만원짜리 2개를 사드리기로 했다. 엄마는 좋은 걸 원한다.

하선군은 외할머니(72)와 같은 방에서 잔다. 간혹 아빠 엄마와 함께 자고 싶을 땐 할머니에게 “아빠 엄마와 오늘 하루 밤만 함께 자면 안될까? 할머니는 외톨이라서 (할아버지는 작고) 내가 없으면 쓸쓸하겠지만…”하고 양해를 구한다. 옆집에 사는 고모가 비뚤게 주차한 것을 보고는 10분 간격으로 창문 밖을 4번이나 살폈다. 고모가 반듯하게 다시 주차할 때까지 연거푸 독촉 전화를 했다. 하선군에겐 그래서 ‘애 어른’이란 별명이 붙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가르침을 알지도 못할 터인데 누나들 앞에선 절대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사랑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대뜸 얼굴을 붉혔다.

황〓잘 모르겠다. 남자와 여자가 좋아하는 거다.

이〓남자와 여자는 왜 사랑을 하나?

황〓다르기 때문이다. 남자는 머리를 자르고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남자는 바지를 입지만 여자는 치마도 입는다. 사슴의 암컷은 뿔이 없고 수컷은 뿔이 있다. 암컷과 여자는 새끼와 자식을 낳는다. 어른이 되면 키가 크고 이빨이 튼튼해지고 어린이들을 혼낼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

하선군의 재능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계산과 분석력이다. 자신이나 주변 사물을 기준 또는 척도로 삼아 대상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이 체화(體化)되어 있는 것 같다.

“몸길이가 14m인 티라노사우루스(공룡)는 나 같은 아이가 10명이나 이어서 누운 다음 다시 2명 더 누워야 똑 같아지는 굉장한 길이다.”

“그린란드는 멀리 떨어져 있다. 일본과는 손톱 하나 거리인데, 그린란드까지는 손톱 14개 거리다. 얼마 전 고모가 일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2시간 걸렸으니, 그린란드까지는 하루가 넘게 걸릴 것이다.”

그가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은 “아빠 키의 몇 배예요?” “우리 집의 몇 배예요?”다.

황〓나도 궁금한 게 있어 아저씨에게 물어보겠다. TV 다큐멘터리에서 보니까 ‘마추픽추’가 나오던데, ‘마추픽추’가 뭔가?

이〓(당황스러운 표정) 남미 대륙의 한 나라에 있는 유적인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황〓알면서 물어보았다. ‘마추픽추’는 페루에 있는 잉카의 마지막 도시다. 몰랐지?

하선군에겐 서연(12·초등6학년) 지연(8·초등2학년) 두 누나가 있다. 어머니 정동순씨(40)는 하선군을 위해 별도로 책을 사주지는 않는다. 3남매가 함께 볼 수 있는 전집류를 산다. 그리고 읽은 책 모서리에 자신의 고유 스티커를 붙이도록 한다. 서연은 하얀색, 지연은 빨강과 노란색, 하선군은 초록과 파란색이다. 하선군은 하루 평균 8권의 책을 읽는다. 누나들의 붙여놓은 스티커 위에 자신의 스티커를 붙이며 경쟁하는 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여긴다. 스티커가 4개가 된 다음은 책을 거꾸로 꽂는다. 어머니 정씨는 “스티커는 자신의 독서량을 눈으로 확인하고 뿌듯하게 여기는 표시물이 된다”고 했다. 정씨는 아들의 지적 수준과 사고 능력을 고려해 책을 난이도별로 5단계로 분류, 스티커가 붙을 때마다 각각 100원 300원 500원 1000원 1만원의 ‘보상금’을 차등지급한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1만원이다. 하선군은 이 돈을 저축하거나, 부모 생일선물을 사거나, 할머니와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고 계산하는데 사용한다. 하선군의 집엔 모두 3500여 권의 책이 있다. 이중 3분의 1가량에 하선군의 스티커가 최소 1개 이상 붙어 있었다.

이〓말을 참 잘한다. 정치에도 관심있나?

황〓대통령 뽑는 것 말인가.

이〓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누가 나왔는지 아는가?

황〓이회창, 정몽준은 들어봤다.

이〓누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황〓바꿀 필요 있나? 김대중 대통령이 계속해야 한다. 노벨 평화상을 탄 훌륭한 사람이니까….

하선군은 대통령 임기가 4년이라고 우겼다.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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