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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6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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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KBS교향악단을 창단해 상임지휘자를 맡고 66년 음악협회 이사장에 취임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펼쳐나간 그는 지휘활동에도 후배들이 감탄할 정도의 정열을 보였다. 98년 KBS교향악단 명예감독으로 취임한 뒤에도 KBS교향악단과 코리안 심포니 등 여러 악단의 연주회를 지휘하는 등 최근까지 지휘열정을 과시했는데, 6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현지에서 지휘한 공연이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그는 후진 양성에도 적극성을 보여 이남수, 원경수, 박은성, 금난새, 장윤성 등 오늘날 국내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주요 지휘자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갔다. 작곡실력도 뛰어나 ‘아무도 모르라고’(김동환 작사) 등의 가곡을 남겼다.
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의협심’과 ‘스포츠 사랑’. 1967년 동베를린사건 재판정에서 유일하게 작곡가 윤이상의 변호인측 증인으로 나서 “이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다른 음악가 수백명을 모두 묶은 것보다 중요하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또 열렬한 스포츠팬이었던 그는 최근까지도 미국 월드시리즈 등 주요 경기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현지에 가서 참관할 정도의 ‘스포츠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바로잡습니다]
△27일자 A29면 원로음악가 임원식씨 부음 기사에서 소개된 ‘한국 최초의 교향악단인 고려교향악단’은 임씨가 창단한 것이 아니라 현제명 계정식씨 등의 주도로 1945년 탄생했습니다. 임씨는 46년 이 악단의 상임지휘자에 취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