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광들 아내'도 축구도사…'축구 얼마나 아나' 설문

  • 입력 2002년 5월 30일 15시 14분


남편이 축구광인데서 비롯된 ‘축구 불화 가정’의 주부일수록 축구 상식이 풍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축구중계 때문에 연속극을 못 봐 화가 난다’ ‘대화가 안 통한다’ 등 ‘축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주부들이 축구 중계 시청 등을 놓고 남편과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통해 축구 지식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동아일보 위크엔드팀이 동아문화센터 20∼70대 주부 수강생 99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축구 스트레스’ 7개 문항 중 2개 이상에 해당되는 주부 8명 중 2명이 12점 만점, 4명이 11점, 2명이 10점을 받아 기타 주부들의 평균을 앞질렀다.

남편이 축구를 ‘매우 좋아한다’거나 ‘좋아한다’고 답한 주부 85명에게 축구로 인해 가족분위기, 부부간 관계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복수응답으로 묻자 ‘남편이 축구 중계 때마다 너무 흥분한다’는 걱정이 24명으로 가장 많았다. ‘남편이 밤늦게까지 축구를 보느라 내가 잠을 못 잘 때가 있다’는 대답이 23명, ‘남편이 축구에 온 신경을 쏟고 집안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걱정이다’는 11명이었다.

축구로 인한 불화요인으로는 ‘남편이 축구 때문에 연속극을 못 보게 해 화가 난다’고 답한 경우가 10명,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부부 간에 대화가 안 통해 답답하다’가 6명, ‘내가 축구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남편이 놀려 화난 적이 있다’가 3명이었다. 그러나 ‘경기에서 한국이 졌을 때 온 식구가 남편 눈치만 본다’고 답한 이는 없었다. 결국 남편들은 축구를 볼 때는 흥분해서 가정 안팎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면 평상심을 되찾는 것으로 보인다.

주부들은 축구상식과 관심도가 낮으리라는 남성 일반의 선입견과 달리 전반적으로 ‘상당 수준’인 것으로 이번 조사에서 밝혀졌다.

축구 경기시간 등 기초상식 6문항과 해트트릭 등 쉬운 중급상식 6문항을 질문한 결과 60명이 10개 이상을 맞혔다.

12점 만점 15명, 11점 23명, 10점 22명이었다. 8점 이상은 모두 84명이었다.

개중에는 엉뚱한 답도 있었다. 축구팀 골키퍼(1명)를 2명이라고 답한 이가 14명, 3명이라고 답한 사람도 1명 있었다.

‘죽음의 조’에 대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뛰는 조’라고 답한 사람이 17명이었다. ‘경기 중 선수가 숨진 조’(2명) ‘선수들이 경기에서 지고 귀국하면 사형에 처하는 나라들’(1명)로 답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63명이 ‘쟁쟁한 팀들로만 구성된 조’라는 정답을 택했다.

풀백(수비수)을 ‘발 뒤꿈치로 차는 것’이라고 답한 이도 31명이나 됐다. 풀백의 ‘백’을 발 뒤꿈치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발 앞꿈치로 차는 것’이라고 답한 이도 10명이었다. 코너킥(운동장 네 구석 중 한 곳에서 공을 차는 것)을 ‘골 문 구석으로 공을 차 넣는 것’이라고 답한 이는 32명이었다. 역시 ‘코너’라는 말 때문에 연상이 엇나간 것으로 보인다.

축구로 인한 스트레스와는 별도로 주부들의 축구에 대한 호감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축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2명이 ‘좋아한다’고 답했다. 32명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중립적 응답, 5명만이 ‘재미가 없다’고 답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 ‘재미가 없다’고 답한 37명에게 ‘나와 축구의 관계를 생각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은 어떤 것이냐’고 물어보자 16명이 ‘저 힘든 걸 왜 하나’에 답했다. 이밖에 ‘우리 아이가 하면 다칠까 걱정된다’(4명) ‘햇볕 때문에 얼굴 타겠다’(3명) ‘축구 중계 때문에 연속극을 못 볼 지도 모른다’(3명) ‘여자가 하면 다리가 굵어지겠다’(1명) ‘월드컵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면 어쩌나’(1명)의 순서였다. 9명은 무응답.

설문대상 99명 중 축구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횟수를 묻자 5회 이상 본 사람은 60명에 이르렀다. 1회는 11명, ‘한번도 없다’는 28명이었다. 응답한 99명의 주부 중 78명은 어떤 형태로든 월드컵 경기를 한번 이상 볼 것이라고 답했다. 39명은 ‘여유가 허락하는 한도에서 가능한 한 많이’, 28명은 ‘한국이 나오는 경기의 중계를 한번쯤’, 6명은 ‘개막전이나 결승전을 TV를 통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5명은 직접 경기장에서 관람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잉글랜드 월드컵 대표팀 평가전이 열렸던 21일 저녁 서울 양평동 스파박스 스포츠센터 2층 트레이닝룸에선 남녀가 양분됐다. 남성 회원들은 사이클링 머신들을 모조리 차지했다. 텔레비전이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대신 주부 회원들은 창 밖을 향한 러닝 머신들을 차지했다.

그러나 경기가 열기를 띠고 남성 회원들이 탄식과 환호성을 지를수록 살짝살짝 TV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주부들이 늘어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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