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SK텔레콤 최재원부사장 "요즘 세대 자기주장 희박"

  • 입력 2002년 5월 16일 14시 36분


SK텔레콤 최재원 부사장은 최근 아홉살짜리 초등학생 아들 방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치워버렸다. 컴퓨터가 초등학생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인 것을 알지만 더 이상 기계하고만 대화하게 놓아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람들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되고 자기 주장도 갖게 되잖아요. 하지만 컴퓨터하고 노는 데만 익숙해지다보면 ‘자기 생각’이 자리잡을 틈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최 부사장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최근 몇 년 사이 입사한 국내 대학 출신 사원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고민하지 않는 이들에게서 최 부사장은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자신의 아들도 같은 모습으로 커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명문대를 졸업했거나 국내 대학을 졸업한 뒤 해외 경영학석사(MBA)과정을 밟은 사람들은 참 재주가 많아요. 영어도 수준급이고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도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일을 좀 진행하다보면 ‘왜 이럴까’하는 의문을 품게 돼요.”

우선 자기 생각이 없다는 점이 제일 심각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뭐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얘기를 하는 직원들이 드물다는 것. 반면 뭔가를 하고 싶은데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여직원들의 경우 남자 직원보다는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게 최 부사장의 분석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는 설령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술을 마시면서 사회문제를 토론하고 하다못해 ‘개똥철학’이라도 펼치고 그랬잖아요. 하지만 90년대 세대들은 그런 고민은 없이 ‘돈만 많이 벌고 따뜻하면 되겠다’는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요즘 기업인들이 모이면 ‘국내출신 중에 쓸만한 인재가 없다’는 점을 심각하게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차라리 운동권 학생들이 지금의 기업 사정으로서는 더 필요한 인재가 아니냐는 사람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자발적으로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회사가 굴러가는 방향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

“미국인이나 중국인들을 써 보면 ‘회사가 이게 뭐냐’는 식의 문제제기를 하는 반면 국내 출신들은 ‘회사가 원래 그런 게 아니냐’는 식이에요. 로봇처럼 맡겨진 일은 잘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왜 이 방법을 택하느냐고 반문하는 직원들은 없죠.”

최 부사장은 이런 직원들을 길러낸 데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원인 제공을 했다고 믿고있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에서는 정답만 중요할 뿐, 정답을 찾아내는 방법이나 과정을 훈련시키는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창의적이라고 칭찬받기보다는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이거나 삐딱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얼마 전 아들 녀석이 학교 선생님에게 심하게 벌을 받고 왔어요. 선생님이 시킨 일에 대해 질문을 했다고 벌을 받았다더군요. 선생님에게는 반항한 것으로 비쳤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릴 때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분명하지 않은 것은 항상 물어보고 따져보도록 배워온 아들 녀석에겐 그 행동이 당연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교육받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연 한국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지….”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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