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방송]TV 3社에 정권 영향력 선거때마다 불공정시비

  • 입력 2002년 1월 21일 18시 16분


지난해 11월 방송위원회는 산하 방송정책기획위원회가 8개월간 연구한 방송정책 관련 ‘종합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 방송정책의 밑그림격인 이 보고서에는 매체간 위상 정립과 균형 발전을 위해 KBS MBC SBS 등 지상파 ‘빅3’의 방송 독과점 구조를 제한해야 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보고서는 위성방송과 케이블TV 등 뉴미디어의 활로를 위해 KBS와 MBC의 시장 점유율을 각각 33% 이내로 제한하고 지상파 ‘빅3’의 위성방송 진출도 규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글 싣는 순서▼

- <上>'방송 모르는 방송위' 정권 눈치만…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들은 “보고서를 폐기하라”고 반발했고 당시 김정기 방송위원장은 “그 보고서는 방송정책기획위원회의 의견일 뿐 방송위원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모호하게 해명했다. 방송위가 8개월간 방송전문가 13명을 모아 연구, 작성한 보고서가 지상파 방송사들의 반발로 정책 입안 자료로 활용되지 못한 채 유야무야된 것이다.

이는 지상파 ‘빅3’의 파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방송위도 “현상황에서 방송정책은 공룡화된 지상파 방송사의 자사 이기주의로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며 “방송위의 정치적 독립은 물론 지상파로부터의 독립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3월 출범할 한국디지털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도 사실상 지상파 독과점의 ‘재판(再版)’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스카이라이프의 대주주이고 스포츠나 드라마 등 수익이 높은 채널도 이들의 것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지상파 ‘빅3’의 시장 점유율은 2001년에 87.1%(1조9112억원)로 KBS가 26.7%, MBC는 39.4%, SBS는 21.0%다. KBS는 수신료 4000억원을 포함하면 40%가 넘을 것으로 추산돼 ‘빅3’의 시장 점유율은 90%를 넘어선다. 이는 미국 지상파의 점유율(50%)이나 영국(60%)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방송학자들은 이러한 지상파 ‘빅3’의 시장 점유율에 대한 제한이 곧 21세기 한국 방송정책의 출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상파 ‘빅3’가 지상과 하늘(위성)을 지배하는 한 매체의 균형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지상파 ‘빅3’의 시장 독과점은 정부의 ‘방송 여론’ 지배로 이어진다는 점이 큰 문제다. KBS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MBC 사장도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를 선임하는 방송위를 통해 정부의 입김이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주요 방송은 정부의 간섭에 좌우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여야간 또는 정부와 시민단체 간의 이해가 엇갈린 사회적 현안이 등장할 때마다 “방송은 정권의 나팔수”라는 비난을 받은 경우가 많고, 선거 때마다 공정보도 논란이 이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지상파 ‘빅3’의 독과점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통령 지방순시 보도 등을 두고 방송사 노사간에 잡음이 잦은 것도 마찬가지다.

상업방송인 SBS는 형식 논리상 정부의 입김이 배제돼 있으나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특히 SBS는 상업방송시장을 거의 100% 독점하고 있어 정부는 이를 깨뜨리겠다는 발상만으로도 SBS를 위협할 수 있다. SBS는 몇 년 전부터 경인방송의 수도권 방송을 막기 위해 국회와 정부에 집중 로비를 하는 등 ‘특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지상파 ‘빅3’는 공룡화된 힘을 바탕으로 특정 현안을 자사 이기주의로 보도하기도 한다. KBS는 최근 ‘뉴스 9’를 통해 16일 국회 문광위 방송법안 심의에서 2TV를 의무 재전송에서 제외한 것을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MBC는 2000년말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논란 때 한국방송광고공사를 수차례 집중 비판해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지상파 ‘빅3’는 지난해 이른바 ‘언론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주요 신문을 집중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중복 편성했으며 심지어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를 전례 없이 생중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빅3’의 보도는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엄기영 MBC 보도본부장이 “지난해 언론개혁 때 MBC가 분명한 목소리를 냈으나 시청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인정할 정도다. KBS의 한 간부도 “방송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빌미로 자신의 몸집만 키우려 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위는 물론 정책과 행정권으로 지상파 ‘빅3’를 규제할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방송 프로그램 심의라는 기초적인 권한도 지상파 ‘빅3’의 일선 PD들에게 무시당할 만큼 방송위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상태다.

한 방송학자는 “한국의 지상파 방송사는 정치권과 이해 관계를 공유하며 외형적 성장을 거듭해왔다”며 “이들의 독과점에 대한 규제는 산업적 균형뿐만 아니라 여론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허 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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