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칠순 기념'저서 두권 낸 조동걸 명예교수

  • 입력 2001년 4월 9일 18시 43분


◇"기념논문집은 일제전체주의 폐습"

독립운동사 연구에 많은 업적을 갖고 있는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3월23일 칠순을 맞은 그가 두 권의 저서(‘한국근현대사의 이상과 형상’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 푸른역사)를 내놓고는 지난달 20일 훌쩍 해외여행을 떠나 7일 귀국했다. 미국에 있는 아들 집에 다녀왔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국내에 남겨진 제자들은 스승의 칠순을 함께 할 수 없었던 데 대해 아쉬운 마음이 앞섰다.

서운하기는 국내에 있는 세 딸과 사위들도 마찬가지. 조 교수는 자식들에게 폐가 되기 싫어 슬그머니 미국에 가서 밥 한 끼 얻어먹고 왔다고 말한다. 미국에서야 칠순이라고 해서 잔치를 크게 벌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

조 교수의 제자인 국민대 장석흥 교수는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꺼려하시는 선생님의 평소 생활태도가 이번에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정년 퇴임이라면 몰라도 칠순은 집안 일 아닙니까? 기념논문집이란 게 다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전체주의의 유산이지요. 그런 폐습은 차차 없어질텐데 저까지 그런 것을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냥 가족과 함께 조용히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조 교수 나름으로는 칠순을 크게 ‘기념’한 셈이다. 저서 두 권의 발행일을 일부러 칠순 생일에 맞췄고, 초대 회장을 맡았던 ‘한국사학사 학회’ 회장도 칠순을 맞았다는 이유로 후학인 숙명여대 이만열 교수에게 넘겨줬다. 이제는 정말로 ‘백수건달’이라며 허허 웃는다.

평생 올곧게 살아 온 조 교수가 역사학계의 후학들에게 남기는 당부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사 이론을 세워야 할 때가 됐다는 것. 지금까지 산만하게 한국사를 연구해왔으나 앞으로는 체계적인 이론을 세워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사가 학문으로서 제대로 정립된다는 주장이다. 조 교수 스스로도 1998년에 내놨던 ‘현대한국사학사’(나남출판)를 대폭 보완해 증보판을 내놓을 계획.

또 하나는 역사교과서가 국정교과서 체제를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국내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판하고 있지만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그래도 검인정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의 중학교에서는 검인정 역사교과서 8종 가운데 한가지를 일선 교사가 선택을 합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여러 학설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가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지적 민주화’이지요. 국정교과서는 유신체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제주의 국가에서나 하는 방식입니다.”

조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조차 최근 검인정 역사교과서 체제로 바꿨다며 우리의 역사교육 현실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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