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연극배우 이주실 꽃동네 복지대 정식합격

  • 입력 2000년 12월 22일 18시 46분


8년째 암과 싸우고 있는 연극배우 이주실(李周實·56)씨. 그의 그칠 줄 모르는 도전은 끈질기다 못해 처절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새 소리, 자동차 소리, 사람들 소리…. 밖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곳에 와 있는 건 아니겠지. 간밤에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이 앓았었는데…. 가만히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 발가락도 꼼지락 꼼지락 비벼본다. 아! 벌떡 이부자리에서 윗몸을 일으키며 외쳐본다. 오늘도 열렸구나. 잘 살아야지.’(이씨의 최근 에세이집 ‘내 인생의 길목에서’의 일부)

이씨는 음성 꽃동네가 세운 충북 청원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 2001학년도 신입생이 됐다. 대학측은 “이씨가 사회공헌자 자격으로 응시했으나 이는 다만 응시 자격일뿐 다른 지원자들과 똑같이 영어 논술 등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치러 합격했다”고 22일 밝혔다.

그는 지난해에도 이 대학의 문을 두드렸었다. 그는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중순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동안 대학생활의 청사진을 펼쳐 놓은 뒤 이렇게 말했었다.

“합격하면 정말 좋겠어요. 하지만 안 돼도 실망하지는 않겠어요.”

결과는 불합격. 이씨는 올 2월 대안학교인 전남 영광의 성지고교로 내려가 정규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의 특성화 교사로, 상담교사로, 때론 엄마와 누나로 생활해 왔다. 각종 부적응 현상을 보이는 ‘못 말리는 아이들’에게 연극을 지도해 입상도 하고 소년원 등에서 순회공연도 했다.

그의 봉사활동 경력은 30년. 홀트재단에 익명의 성금을 내고 사무실을 찾아 돕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꽃동네, 소록도, 동두천 미군기지 주변 등을 찾아다니며 나병환자나 기지촌 여성 등과 함께 생활했다. 이제 대학생활에 대한 그의 포부는 그간의 봉사경험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것.

이씨가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은 93년 11월. 당시 의료진은 “1년 정도 살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연극은 끝나지 않았다”며 병실을 뛰쳐나와 ‘생코랑 말코랑 이별연습’ 등 여러 편의 연극을 성공리에 마쳤고 봉사활동도 계속했다.

암환자들 사이에서 ‘이주실 요법’(부단한 도전)이라는 말이 통용될 만도 하다.

<청원〓지명훈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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