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0년 9월 22일 18시 3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1987년, 출판 기획자 오슨 카드는 작가들에게 소설 청탁서를 발송했다. 작가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인지 책은 묶여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SF작가 마이크 레스닉은 청탁서를 받고 머릿속에 전등이 켜지는 것 같았다.
“다른 작가는 극단화된 문명을 이야기로 쓸 것이다. 반대로 나는 지구의 문명화에 저항해 외계를 택한 부족을 그려보리라. 관습과 주술, 금기가 살아있는 문명이전 부족의 이야기를….”
아프리카 대초원의 기후에 맞춰져있는 행성 ‘키리냐가’. 케냐 키쿠유족이 서양 문물을 거부한 채 옛 생활양식 그대로 삶의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땅이다. 주인공은 부족의 주술사인 코리바.
발부터 태어난 아이를 ‘저주받았다’며 살해하고, 글 배우기 원하는 여자아이의 소망을 일축해 자살로 이끄는 코리바는 문명의 눈으로 볼 때 이해 불가능한 인물이다.
‘땅과 조화를 이루며 단순하게 사는 삶’을 유토피아로 단정짓는 그에게 서구인의 ‘합리’와 부족의 ‘합리’는 화해할 수 없는 층위를 이룬다.
젊은이들은 문명세계를 동경하여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코리바의 지혜로 감당하기 힘든 부족의 정신적 균열이 ‘유토피아’를 위기에 빠뜨린다.
작가는 ‘문명―자연’의 이분법속에 한 편에 서기를 거절한다. 모든 개인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문명이란 존재하는가? 자연과의 친화란 인간의 지배를 자제하는데서만 얻어지는가? 작가가 행간에 숨겨놓은 수많은 질문에 응답하면서 그의 숙고에 동참할 수 있는 데 책의 매력이 있다.
‘풍부한 상상력과 재미가 담겨있고, 전(全) 은하적으로 위대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실린 서평. 각권 260쪽 75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