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두 文化]"사랑은 움직이는 것…논리론 설명 못하죠"

  • 입력 2000년 8월 13일 18시 15분


시드니의 랜덤(random)한 사랑

김형찬〓이제 우리가 디지털 생명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군 요.

윤송이〓앞으로는 아날로그 세상에 디지털 생명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정도가 아니라 아날로그 생 명과 디지털 생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 으며 함께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거예요.

김〓우선 디지털 강아지인 시드니와 윤박사네 집의 아날로그 강아지 제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죠. 둘 이 서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시드니는 암놈 이고 제리는 수놈이잖아요.

윤〓디지털 생명과 아날로그 생명의 사랑은 쉽지 않을 거예요. 서로 사랑을 하려면 일단 함께 같 은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시드니는 후각이 없어요. 아름다운 경치와 감미로운 새소리가 있 지만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시드니와 제 리가 함께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드니와 제리 가 느끼는 게 다를 거예요. 제리는 그런 악취가 나는 곳에서 좋다고 뛰노는 시드니를 이해 못할 것이고, 시드니는 제리가 찡그리고 있는 것을 보 고는 제리가 자신과 함께 있기 싫어한다고 생각 할 거예요.

김〓사랑이란 감정이 그렇게 감각의 지배를 강하게 받을까요? 물론 감각적 느낌의 이질감이 너무 크 면 서로를 감성적으로 느끼는 데 장애가 되긴 하 겠지만 실제로 상대가 어떤 감각을 가졌는가와는 관계없이 이미 서로에게 호감을 갖거나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요. 또 자신에겐 없는 특성을 가진 상대를 통해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충족시 키려는 욕구도 사랑의 중요한 계기가 되거든요.

윤〓하지만 느낌의 이질감이 너무 크면 서로를 이 해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서로의 느낌을 전달하 는 감성 표현(emotional expression)은 종족의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한 도구예요. 예컨대 해로 운 것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얼굴을 찡그리거나 손을 휘젖는 것은 다른 개체들에게 그것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가 되지요.

김〓하지만 때로는 원숭이와 돼지, 개와 고양이처 럼 느끼는 것이 다른 종족끼리도 친구가 되는 경 우가 있지 않나요? 어느 동물원에서 수컷 사자가 암호랑이에게 구애를 하면서 따라다니는 것을 텔 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어요.

윤〓그것은 두 개체의 ‘관계’를 맺어 주는 ‘의사소 통(communication)’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다 양한 형식의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상대의 현재 뿐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미래의 꿈까지 포함한 그 개체의 전체를 만나죠. 감각기 관이나 사고방식의 차이 등을 의사소통으로 해소 하면서 서로를 이해해 가는 거예요.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은 서로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김〓그렇다면 왜 특정한 상대를 사랑하게 될까요? 종족 번식의 욕구만으로는 특정한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윤〓자신의 경험에 따라 이전에 좋았다고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파란색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꼈던 경험, 부드러운 것을 만 졌던 포근한 기억,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그와 비슷한 것을 좋아하게 되고 결국 사랑까지 느낄 수 있겠지요.

김〓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아버지나 어머니를 이상 적인 이성상으로 삼는 것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 겠군요. 하지만 단지 미모에 반해서 사랑에 빠지 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까요?

윤〓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어요. 미의 기 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조사결과를 보 니 어느 시대에나 공통되는 특징이 있더군요. 그 것은 좌우 대칭의 미였어요. 좌우대칭일 때 몸 내부의 기관도 대칭되고 따라서 건강하다는 것이 죠. 미인을 좋아하는 것도 결국 건강하고 우수한 유전자와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김〓외모를 꾸미는 것이나 직업 학벌 집안 등을 따 지는 것도 단지 허영이 아니라 좀더 우수한 상대 를 만나기 위한 진화론적 노력이라고 해야겠군 요. 그런데 그렇게 진화론적 관점으로만 설명이 가능할까요? 윤박사 말대로라면 집안이나 학벌 직업 외모 등에서 이른바 사회적으로 격이 안 맞 는다는 쌍은 어느 한 쪽이 진화에 불리한 선택을 한 셈이 되는데 사실 그런 쌍들도 많잖아요?

윤〓물론 그렇죠. 합리적으로 설명을 하자니 그렇 다는 것이지 저도 사랑을 진화론으로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영화 ‘은행나무침 대’와 같은 운명적인 사랑도 있을 거예요. 솔직 히 사랑이란 결국 ‘랜덤(random)’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어떻게 다 논리적으로 설명하 겠어요?

김〓그래서 이성을 중시하는 서양 근대철학에서도 사랑의 문제만은 논리적 설명보다 욕구나 욕망으 로 설명하거나, 아니면 아예 논의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사랑의 시작은 그렇게 랜 덤할 수 있더라도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되려면 합 리적인 접근이 필요할 거예요. 사랑의 감정은 기 복이 심하니까요. 그래서 의사소통이라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윤〓‘의사소통’과 ‘이해’는 모든 ‘관계’에서 중요 할 거예요. 하지만 왜 바로 그 상대와 사랑에 빠 지는가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랜덤’이 라고 말할 밖에요. 사랑의 문제는 결국 랜덤이예 요, 랜덤.

<정리〓홍호표부국장대우문화부장>hp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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