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칼럼]'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 입력 2000년 5월 26일 19시 49분


파인만 교수님, 소문처럼 골 때리는 분이셨군요. 양자전기역학 이론을 재정립하는 혁혁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1965년)을 받은 석학이 말입니다. 여기 실린 당신의 짓궂은 장난들, 기상천외한 에피소드가 소설은 아니겠지요. 이 책 때문에 당신이 아인슈타인보다 유명해졌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듯 합니다. 대학 1학년 때 밑줄 치며 공부했던 당신의 ‘물리학 강의’가 반에 반만 재미있었다면 저도 물리학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처음엔 당신의 천재성에 질투가 일었습니다. 물리학만 가지고 논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이미 초등학생 때 온 동네 라디오를 다 고쳤고, 젖은 손에 벤젠을 적셔 불을 붙이는 ‘과학적’ 마술을 보여주기까지 했지요. 봉고 치는 실력도 탁월했고, 몰래 그림을 그려서 내다 팔았다니 주눅들 밖에요. 핵폭탄 제조법에 대한 기밀문서가 담긴 금고를 10분만에 뚝딱 열어버린 금고털이 전문가이기도 했지요. 혹시 ‘형사 가제트’의 실제 모델이 아니었나요.

하지만 천재는 창조적인 노력의 결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MIT 재학시절 ‘무의식’에 대한 리포트를 위해 매일 밤 자기 꿈을 치밀하게 관찰했고, 설탕통에 개미가 꼬이지 않게 하려고 매일 창틀에 모인 개미의 습성을 연구했더군요. 당신에겐 주변의 모든 것이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내가 노벨상을 받게된 그림(파인만 다이어그램)을 비롯한 나의 모든 업적은 흔들리며 날아가는 접시를 생각하며 시간을 낭비한 일에서부터 나왔다.”

당신의 인간미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타임’지로부터 연락을 잘못 받은 뒤 낙담했던 속좁음하며, 새벽에 노벨상 수상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아침에 다시 하라”며 끊어버린 괴팍함까지. 고매한 대학교수 신분에 술집에서 ‘남자다움’을 과시하며 주먹질을 한 것이나 늦바람이 불어 아가씨 꼬드기에 열을 냈던 대목에선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단 하나, 당신의 세계관은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세계에 나는 책임이 없다는 자세를 가지니 훨씬 행복했다’고요? 히로시마가 아비규환에 빠졌을 때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핵폭탄의 폭파반경을 계산하는 그 ‘행복’인가요? 핵무기 개발에 함께했던 선배인 오펜하이머는 평생 반핵운동에 헌신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대답을 영영 들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고백컨대, 당신의 명성과 이 책의 재미에도 불구하고 찬밥신세가 될 뻔 했습니다. 10여년전에 나온,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란 해적판 탓입니다. 읽을 사람은 대충 봐 버린 스테디셀러라는 점이 걸렸던 것이지요. 결국 맘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이 책을 보고 꿈을 키울 미래의 과학자를 위해서입니다. 1권229쪽,2권274쪽. 각7000원.

▼리처드 파인만은 누구▼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년 미국 뉴욕 태생. MIT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차대전 중에는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코넬대와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에 몸 담았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파사고 조사를 위한 로저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는 사고보고서에서 “나사가 우주선 승무원과 러시안 룰렛을 벌인다”고 안전불감증을 비판했다. 양자전기역학을 재정립한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가장 독창적인 이론 물리학자로 꼽힌다. 1988년 2월 암 투병 끝에 69세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열정적인 강의를 멈추지 않았다. 음악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장난기가 가득해 익살꾼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그가 집필한 ‘물리학 강의’ 시리즈는 전세계 과학도의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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