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환경운동가 김소희씨 '콘크리트마당에…' 발간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04분


환경운동가 김소희씨(33·서울 성동구 행당동)가 남편과 함께 세살난 딸 동아를 데리고 부산가는 기차를 탔을 때였다.

“동아야, 저기 잔디밭 좀 봐. 이쁘지?”

김씨가 넓게 펼쳐진 ‘잔디밭’을 흐뭇하게 보며 말했다.

“동아엄마, 지금 뭐라 그랬지?”

남편 임종석씨(34)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잔디밭이 예쁘다고 했지요.”

“이 사람 큰일 날 사람이네. 논바닥에 잔디 깔아 놓은 것 봤어?”

1993년 환경운동연합 공채1기로 들어가 환경운동을 해온 김씨는 그 때가 가장 부끄러웠다고 한다.

‘벼를 잔디로 착각한 환경운동가’. 운동을 위해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책을 읽고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공부는 많이 했지만 정작 다른 ‘생명’에 대해 무관심했던 자신. 흡사 학습지에 파묻혀 ABC는 달달 외우지만 다양한 생명체가 숨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며 자랄 딸 동아와 비슷한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북 봉화에서 농사를 짓는 친지를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동아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저 아이가 햇빛을 참 좋아하는구나”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만 자신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에게 크레파스를 쥐어주고 노래도 들려주며 혹시 우리 아이가 미술이나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만 해오던 그였다.

2년전 가을. 김씨부부는 그래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전세를 얻어 이사했다. 동아와 함께 이듬해 봄엔 마당에 40여종의 꽃과 채소를 심었다. 그리고 꽃과 채소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하루하루 기록했다. “오늘 가지에 벌레가 생겼는데, 내가 벌레에게 과자부스러기를 줬어”하며 자연을 친구로 만들어가는 딸의 모습이 대견하게 다가왔다.

김씨는 학습지 내용을 줄줄 외던 동아가 “토마토 가지가 잘려나갈 때 가슴이 아팠다”는 아이로 변화하는 1년간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 ‘콘크리트마당에 꽃을 심자’(사람in간)로 펴냈다. 그는 “동아같은 도시아이에게 고무신에 미꾸라지를 담아 뛰어다니던 어른들의 어린시절과 같은 기쁨을 안겨준 콘크리트 마당의 생명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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