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극]굿판 '일식' 21일부터 문예회관대극장서 공연

  • 입력 2000년 1월 5일 18시 32분


"액막이로 놀아볼까, 비나리로 놀아볼까나∼”

1월1일 오전6시반 부산 해운대 백사장. 어스름한 바다 위에 구름이 약간씩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백사장을 가득메운 20만명의 해돋이 관광객들은 바닷가에 설치된 무대에서 공연되는 음악극 ‘일식(日蝕)’을 보면서 새 천년의 해가 떠오르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일기예보상 일출시각인 오전 7시36분. 두껍게 덧씌워진 구름을 뚫고 해가 나오기엔 역부족인듯 보인다. 50여명의 배우들은 북과 장고가락에 맞춰 온 몸으로 춤추며 본격적인 ‘해 띄우기 노래’를 시작한다. 5분으로 예정된 춤을 20분간이나 신명나게 추어댄 배우들의 열정이 하늘에 닿아서일까. 7시53분 드디어 시뻘건 해가 구름을 뚫고 불쑥 솟아올라 해운대 백사장은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어느 날 문득 해가 사라져 버린 세상. ‘일식’은 대낮에 해가 떨어져 캄캄해진 광화문 네거리에 가로등을 켜러 출동한 전기수리공들이 겪는 이야기다. 이들은 어두워진 광화문에서 이순신장군을 비롯해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민비를 시해하러 온 일본 미우라 공사 일행,형장으로 가는 전봉준, 아관파천 중인 고종 등 역사적 인물들을 환상 속에서 만난다.

전기수리공들은 ‘왜 해가 떨어졌을까, 해를 다시 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굿을 통해 불려나온 수많은 민족 제신(諸神)에게 묻는다. 결국 해답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향가 ‘도솔가’에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1000년전 두 개의 해가 나타난 혼돈기에 월명사가 이 노래를 지어 부른 것처럼 새 천년의 해를 띄울 수 있는 ‘오늘의 노래’(문화)를 만들어 부르라는 것이다.

‘일식’은 전통 연희양식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온 연희단거리패가 ‘산씻김’(87년) ‘오구-죽음의 형식’(90년)에 이어 ‘굿의 연극화’를 시도한 세번째 작품.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가 지난해 10월 새로 둥지를 튼 경남 밀양 ‘우리극연구소 밀양연극촌’에서 제작한 첫번째 대형 음악극이다. 영화 ‘꽃잎’‘아픔다운 시절’‘이재수의 난’ 등을 작곡한 원일이 음악을 맡았다.경기도당 굿놀이를 기반으로 전통과 현대의 악(樂) 가(歌) 무(舞)가 한데 어우러진다.

4∼6일 부산 문화회관 대강당 공연에 이어 21∼30일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평일 7시반, 토 4시 7시반, 일 3시 6시반. 1만∼2만원. 02-763-1268

<부산〓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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