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누드'등 '영상 에세이' 잇단 출간

  • 입력 1999년 8월 27일 19시 10분


▼ 신현림 '희망의 누드' 하창수 '행복한 그림책'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일상의 고백'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멈추고, 언어가 의식의 표면으로 쉬 떠오르지 않을 때, 글쓰는 이들은 종종 충동에 휩싸인다.

“주어도 술어도, 마침표도 없는 문장을 쓰고 싶다. 읽지 않아도 온 눈으로 빨려드는 문장을.”

그런 충동의 산물일까. 문장과 그림이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이 글과 함께 어울려드는 영상 에세이 세 권이 선을 보였다.

·시인 신현림의 산문집 ‘희망의 누드’(열림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며 익힌 눈썰미로 국내외 사진작가들의 신선한 영상을 가득 책갈피에 채웠다.

“지난 5월, 논산을 지나면서 너무 예쁜 자연 풍경을 보고 그것을 ‘희망의 누드’라고 이름지었다. 그때 본 초록 들판은 마음속에 모든 가능성을 비춰주는 불빛처럼 피어올랐다.”

시인은, 설령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지라도, ‘욕심 없이 천천히 흐르다 보면 괴로운 일을 잊고, 아픈 시간은 덤덤히 넘어가고, 사랑이란 이름의 나무가 그늘진 내 쉴 자리를 마련해주겠지’라며 미소짓는다.

·소설가 하창수의 카툰에세이 ‘행복한 그림책’(늘푸른 소나무).

고등학생 시절 화가를 꿈꾸었다는 작가.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여가며 그린 카툰 1백여점을 잠언 같은 단상들과 함께 묶었다. 그 단상들은, 고집과 뻣뻣한 단언(斷言)만이 판치는 시대에 한줄기 신선한 바람처럼 읽힌다.

“인간은 무(無)중독자로 태어나 경(輕)중독자가 되고, 중증의 중독자가 되어 죽어간다. 무엇에 중독되는가가 그가 어떤 인간인지를 말해 줄 뿐”(‘중독자’)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문학사상사).

프린스턴에서 보내온 수상집 ‘슬픈 외국어’이후의 산물. 전작에서 미국의 정신적 황량함에 스치듯 사로잡혔던 불안감은 없다. 이제 하루키는 안락해 보인다.

보스턴 근교의 전원도시 케임브리지. 마라톤과 고양이로 상징되는 잔잔한 일상이 그를 사로잡는다. 특유의 에스프리와 유머가 도처에서 출렁인다. 자신과 이웃이 찍은 사진 설명도 때론 제멋대로다.

“하늘을 자세히 보라. UFO가 비행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그냥 목장의 울타리다. 소가 교미하고 있는 사진을 싣자고 했지만, 무시당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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