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얼렁뚱땅' 大衆역사서 판친다…100여종 출간

  • 입력 1999년 8월 20일 18시 47분


규장각’에 있던 역사서적들이 ‘종로통’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역사의 대중화라는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 오락화가 심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96년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시작된 대중역사서 붐. TV드라마 ‘용의 눈물’의 인기에 힘입어 더욱 불이 붙었다. 지금까지 나온 대중역사서는 줄잡아 100종.

대중역사서 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류에 편승한 출판. 모방의 혐의가 짙다는 비판이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자 곧바로 ‘한권으로 읽는 이야기 조선왕조사’ ‘한권으로 읽는 조선인물실록’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 등 비슷한 이름의 책들이 등장했다. 전체적으로 내용이 비슷하고 특징도 찾기 어려워 “쉽게 베스트셀러를 만들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고심해 만든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내용 부실도 심각하다. 전문가가 아닌 프리랜서들이 쓴 책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잘 짚어내기는 하지만 접근방식이 평면적이다. 학계의 다양한 시각이나 논란 등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학계에서 검증되지않은 사실을‘애국적견지에서과감하게’소개하기도한다.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은 선정된 테마가 지나치게 일반적이고 별 새로운 내용도 없다. ‘우리 민족 우리 역사’는 ‘우리 역사를 빛낸 사람들 편’에서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세종대왕 이순신 등 너무 익숙한 영웅만을 다뤄 아쉬움을 남긴다.

전호태 울산대교수(한국사)는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점점 커져가는데 역사학계는 아직도 아카데미즘에 갇혀 있다.학계가 대중역사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만 이같은 오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중역사서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은 어떻게 좋은 책을 골라 읽을 수 있을까?

우선, 하나의 주제나 쟁점을 다룬 책을 읽어가면서 관심과 흥미를 넓혀 나가는 것이 좋다. ‘우리 궁궐이야기’ ‘한국사에도 과학은 있는가’ ‘우리 역사의 7가지 풍경’ ‘남북 역사학의 17가지 쟁점’ 등이 이런 책들이다.

자료로서의 가치 여부도 살펴야 한다. 이는 저자의 주관적인 감정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정보가 제대로 담겨있는지를 말한다. 사실 정보가 많아야 좋은 참고서적이 될 수 있다.제목이 과장됐거나 선정적인 책도 경계 대상. 조선 태조부터 8대 예종까지만 다루면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조선국왕 이야기’로 제목을 단 책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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