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선언 50돌]피의자 『10시간대기 10분 조사』

입력 1998-12-09 19:27수정 2009-09-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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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은 유엔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한 지 꼭 50년이 되는 날. 정부와 각 단체에서는 이 날을 기념해 ‘인권’을 주제로 요란한 기념행사를 치르지만 우리의 인권현실은 아직도 부끄러운 곳이 많다.

최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정부기관 2급 공무원 K씨(55).

수사검사는 혐의를 부인하는 K씨를 매일 검찰청으로 소환했다. K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싸늘한 구치감 바닥에 마냥 앉아 있어야 했다.

수갑과 포승에 묶인 손과 팔에서 감각이 사라질 무렵 검사는 K씨를 불러 물었다.

“심경에 변화가 있습니까.”

K씨가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하자 검사의 신문은 10분을 넘기지 않고 끝났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10분 조사를 위한 10시간 대기’는 계속됐다.

K씨는 “꽁꽁 묶인 채 하루종일 구치감에 앉아 있으면 바닥의 냉기보다 모멸감 때문에 온 몸이 떨린다. 그건 일종의 고문이다”고 말했다고 K씨의 변호인이 전했다.

인권의 사각지대는 ‘인권보호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법원에도 있다.

9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의 한 형사 법정.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혐의로 구속된 30대 중반의 정모씨는 수갑을 찬 채 20여분간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응했다.

법정에서는 조직폭력배나 살인범같은 강력범에게만 수갑이나 포승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재판장은 정씨의 수갑 찬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판을 진행했고 변호인조차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교도관은 피고인의 포승을 풀었다가 다시 묶는 것을 귀찮아 하고 재판장도 교도관에게 한두번 주의를 주다가 결국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우리 법정의 현실이다.

서초동 법원청사는 영장실질심사제도가 도입된 97년 이전에 지어졌기 때문에 실질심사 피의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구조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피의자가 일반 민원인과 마주치지 않고 법정으로 갈 수 있는 전용통로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

따라서 법원청사에서는 수갑찬 실질심사 피의자들이 오랏줄로 연결돼 마치 오리떼처럼 끌려 다니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일반인은 피의자나 피고인을 법정에서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형사소송 실무의 기본원칙”이라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朴來群)사무국장은 “법을 집행하고 심판하는 검찰과 법원부터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형권·하태원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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