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목사 웽거린 소설 「성서」 국내 번역

  • 입력 1998년 10월 14일 19시 17분


컴퓨터 네트워크로 전 세계가 하나의 그물코에 엮이는 시대. 그러나 20세기의 인류도 거친 자연앞에 내던져졌던 원시인 못지않게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산다.

최근 국내 번역된 월터 웽거린의 장편소설 ‘성서’(민음사, 원제 ‘The Book of God’). 96년 2월 미국에서 발간된 후 97년말까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기독교 유일신 개념에 저항이 심한 일본에서조차 6월 첫 발행 후 3개월만에 10쇄를 돌파했다. 이 책의 돌풍도 ‘궁극적인 것’에 기대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불안심리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국내 첫 출간된 3권은 성서 구약편.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로서 맨처음 하느님과 ‘약속’을 했던 아브라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대제사장 에스라의 계시로 끝난다.

처녀작 ‘검은 암소의 책’으로 78년 전미(美)도서상을 수상한 소설가이며 목사인 저자는 성서 속의 인물들을 전면에 끌어내 딱딱한 경전에 육체성을 부여했다. 맏아들만이 얻을 수 있는 축복을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속인 야곱, 아버지의 계책 때문에 자매가 나란히 야곱의 아내가 된 레아와 라헬의 질투 등 신에 대한 복종과 인간적 욕망 사이에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소설 ‘성서’를 관통하는 단어인 ‘약속(Covenent)’은 성서신학 이해를 위한 핵심어.

‘성서’를 검토한 고영현목사(서울 안동교회)는 “신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이 일방적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라 쌍방간에 일종의 계약을 맺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약속을 지킨 사람에게는 축복, 위배한 사람에게는 심판을 내리는 신의 모습’은 계약 위배에 엄격한 서구인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도 가늠케 한다.

최근 국내출판계에서는 종교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는 추세다. 황금가지는 이달말 ‘성서’신약편 2권을 추가발간하며 민음사는 성철종정 5주기에 맞춰 11월초 소설 ‘성철’을 내놓는다. 문학동네는 영국BBC출판사에서 낸 ‘예수의 삶(Lives of Jesus)’을 내년 1월 출간예정으로 번역중이다.한길사는 이누카이 미치코의 ‘성서기행’을 12월 발간한다.

이에 대해 한 출판관계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모세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영화 ‘이집트의 아들’을 제작중인데서 세기말의 대중적 정서를 엿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몇년전부터 뉴에이지와 선불교의 열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구미처럼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종교적 관심’이 일상적으로 논의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종교관련 서적 붐은 시장선점을 위한 출판계의 경쟁도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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