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 야간운동 바람…밤늦게 훌라후프-조깅등 즐겨

  • 입력 1998년 10월 12일 1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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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잔잔한 호수에 붉은 노을이 번지는 것도 잠깐, 지평선 아래로 태양이 깜빡 사라진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면 트레이닝복으로 무장한 아줌마 조깅족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영희 엄마, 땀복을 입고 와야지. 반바지 입고 뛰면 백날 해도 소용없다니까. 땀을 흘려야돼.”

호숫가 조깅코스 7㎞ 구간은 순식간에 아줌마들로 꽉 들어찬 느낌. 연인끼리 2인용 사이클을 함께 타거나 청소년들이 롤러스케이트와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낮과는 사뭇 다른 풍경. 1백여명의 아줌마 ‘야(夜)깅족’은 뛰다가 지치면 쉬고, 뒤로 걷다 달리기를 되풀이 하며 가을 달밤을 만끽한다.

살림이 팍팍해진 요즘.헬스클럽이나 수영장 대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달밤 체조’를 하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 저녁 설겆이를 마치고 일일연속극까지 챙겨본 늦은 밤.

경기 일산 호수공원과 성남의 분당 중앙공원,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공원, 대규모 아파트단지 주변 학교 운동장에는 밤마다 ‘건강미’ 넘치는 아줌마들의 가뿐 숨소리가 들린다.

▼밤의 훌라후프

20층,25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고양시 행신2동 소만초등학교 운동장. 밤 9시가 되자 ‘훌라후프 동호회’ 아줌마들이 나와 신나게 허리를 돌린다. 춤추는듯 흥겨운 몸짓, 까르르 울려퍼지는 웃음소리….

“훌라후프가 배를 탁탁 쳐주니까 뱃살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 두달만에 10㎏이나 빠졌다니까.” 소만마을 아파트부녀회장인 최중자씨(42)는 훌라후프 재미에 홀딱 빠졌다. 동호회에서 사용하는 훌라후프는 운동량이 많도록 굵은 전선이나 PVC파이프로 직접 제작한 ‘특수 훌라후프’. 5백∼1천번씩 훌라후프를 돌리고 운동장을 몇바퀴 돌고나면 하루동안 ‘쌓인’ 살도 스트레스도 모두 날아간다.

운동과 수다가 거의 끝나가는 밤 10시반. 정리운동으로 ‘이소라의 다이어트 체조’ 시범을 보이던 주부 김은옥씨(33). “하루 할일을 끝낸 밤 9시는 주부들에게 너무 편한 시간이예요. 운동하고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면 개운해서 좋고요. 날마다 이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밤에 뛰는 진짜 이유

저녁 8시 분당 중앙공원. 수십개의 하얀 배드민턴 공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동네 아줌마 3,4명이 함께 조깅하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휴대전화를 들고 달리던 이선영주부(34). “밤 조깅은 살빼기 차원만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축 처져 있었으나 요즘은 성격도 밝아지고 아침이면 새로운 힘이 솟는다. 주부의 건강과 활력은 가족의 기(氣)를 살릴 수 있는 에너지원이 아닐까.”

아줌마들로부터 시작된 밤운동은 남편과 아이들까지 함께 나와 온가족 운동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가족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정성원(38·기아자동차) 최연진씨(34) 부부. 평일에는 밤 8∼10시에 타고 주말에는 아예 저녁밥까지 준비해 나온다.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배경으로 풀냄새를 맡으며 한바퀴 도는 기분은 어떤 실내운동과도 비교할 수 없지요. 손잡고 달리면서 어려운 시대일수록 가족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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