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병 폐지2년]「IMF귀신」잡는 첨병 많다

입력 1998-07-02 18:49수정 2009-09-25 08:38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방위병 출신인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사장. 현역병이었다면 아래아한글을 때 맞춰 선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방위병이었던 89년 당시 저녁 퇴근 시간을 활용해 아래아한글을 세운상가 러브리컴퓨터에 팔았고 그 돈으로 한글과컴퓨터사를 세웠으니까.

‘방위의 힘’은 또 상대적으로 짧은 복무기간, 그리고 군대문화 중 부정적 측면이 현역병 출신에 비해 덜 체질화됐다는 점에서도 발현된다. 취업전문지 ‘리쿠르트’의 한 관계자. “94년 조사에 따르면 군출신별 전문직 종사자 비율에서 방위병 출신이 장교출신 보다 훨씬 높았다. 방위와 장교의 비율을 감안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잘나간다고 해도 방위병 출신은 군대얘기만 나오면 서글프다고 말한다. 우선 너무 왜곡돼 세상에 알려져있는 방위의 이미지 때문.

방위병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사복을 입고 근무하는 ‘동방위’ 또는 ‘PX방위’ 정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같은 보직은 일부에 불과했다.

실제로 대다수 방위병은 현역병과 비교해 난이도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 숱한 일들을 수행했다. 해병대방위는 물론, 헌병 기동타격대 특공대 행정병 전산병에 이르기까지…. 내부 군기도 엄격했다. 특히 ‘송추방위’라고 알려진 사단 방위병들은 전국 부대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신출귀몰한’ 군인들이었다. 상당수 현역병이 복무기간 1백㎞행군을 한두번 하는데 비해 이들은 1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4,5번의 행군을 해냈다. 물론 이런 훈련 때는 방위병의 유일한 낙(樂)인 ‘퇴근’마저 반납했다. ‘귀신잡는 방위’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

그럼에도 ‘현역병’하면 떠오르는 ‘최전방 오지’ ‘유격훈련’ ‘군인정신’ 등의 이미지에 밀려 방위병은 세상에서 늘 조롱과 멸시의 대상인 ‘군인 아닌 군인’으로 취급당해왔다. 아직도 ‘바퀴벌레와 방위의 공통점’이라는 우스개가 PC통신에서 높은 조회수를 올리고 있을 정도니까.

또 의외로 많은 기업에서 방위출신은 복무기간이 몇개월 짧다(80년대 중반 기준 대학재학 이상 학력 남자의 경우 현역병보다 9개월 짧음)는 이유로 군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방위병출신 중에 이같은 사회의 조롱과 차별대우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방위출신인 이창석씨(30·용산전자상가 PC매장 운영). “한미군사합동훈련인 ‘팀스피리트’에까지 참가했고 나름대로 국방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끔 술자리에서 ‘×방위’라는 단어를 들을 땐 섭섭하지만 어쨌든 우리보다 오랫동안 청춘을 반납한채 현역복무한 친구들에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낮에는 얼차려와 훈련, 잡역으로 허덕이다가도 신병이 들어오거나 고참병이 소집해제될 때는 부대 근처 선술집에서 어깨동무하던 그들.

80년대, 90년대초반 도시 근교 군부대 앞에서 저물녁마다 그들이 연출했던 풍경은 분단시대 우리사회의 독특한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허옇게 민 뒷머리, 티셔츠에 낡은 청바지 차림의 손톱에 때낀 ‘늙은 고교생’들이 열을 맞춰 퇴근하면서 힘차게 노래 부른다. “보오람찬 하루일을 끝마치고오서∼.”

〈김종래기자〉jongrae@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