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보면 돈이 많은 줄 안다. 그러나 그는 보통의 한의사일 뿐이다. 뚱딴지같은 ‘해명’.
“원래 어렵게 공부했고 아무 것도 없는데서 한의원을 차려 밥은 먹으니 다 털려봐야 본전아니냐.”
김씨는 어릴 때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나 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배고프다는 주위의 만류 때문에. 그러나 경희대한의대 졸업후 자리가 잡히자 미술에 대한 열정이 샘솟았다. 전람회를 드나들었고 작가들과 술자리도 자주했다. 그러다가 딱한 사정을 들으면 돕기 시작한 게 6년 됐다.
냉정한 현실 때문에 젊은 작가의 재능이 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더욱이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 웬만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화단의 현실을 몹시 못마땅해 한다.
김씨가 지금도 돕고 있는 작가는 많다. 다만 이름 밝히기를 꺼린다. 작가의 명예를 생각해서. 소장 작품은 3백여점. 그저 돕는다기보다 작품성과 작가의 장래성을 따져보고 산 것들이다.
그러나 김씨는 개인적 후원은 소수만 도울 수 있을 뿐이고 꾸준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디자이너인 아내 김보라씨가 적금을 털 때도 아무 말이 없었지만 김씨 스스로가 버거움을 느낀다.
“예술이야말로 우리 것을 찾는 분야입니다. 우리의 정신을 해외에 알리고 문화 상품의 부가가치도 더 높이고. 국가 차원의 후원 방안이 절실합니다.”
〈허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