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양뺨이 터질듯이 붉어있었다.
그토록 반짝거리고 춤추는 듯한 눈동자를 언제쯤 봤지?
‘왜 그랬어!’
무섭게 노려보는 눈길에 아이의 눈동자는 점차 빛을 잃고 마침내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고개로 두 고개, 먼 길이었다.
나는 갓길조차 제대로 없는 굴곡진 도로와 그 위를 제집이나 되는듯이 맹렬히 질주하는 덤프트럭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아이를 마중나간 남편은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주변을 서성거릴 터였다.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푸하하!’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한 에미답지않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젓가락같은 사지와 예쁘장한 얼굴로 항상 과보호의 대상이었던 아이였다.
나는 비로소 오랜 근심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서른 일곱.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였고, 포기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다.
1997년의 겨울을 아홉살된 아들과 서른일곱된 나는 남들이 보기엔 위험천만하고 어설픈 도전으로 보내고 있었다.
‘따르릉…’ 마침내 당선됐단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다준 아들 영진이와 노트북을 살짝 밀어내고 검은 눈망울을 깜빡이던 딸 지영이, 얼음송곳같은 모니터로 가장 날 힘들게 했던 남편 서광수씨와 존경하는 엄마 박건화 여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올곧은 자세와 비법(?)을 낱낱이 전수하신 영상작가 전문교육원의 선생님들에게 머리숙여 깊이 인사드린다.
▼ 오화영
△61년 서울 출생
△홍익대 미대 도안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