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10돌/진원지]고문惡名 남영동-聖地 명동성당

  • 입력 1997년 6월 11일 09시 52분


서울 명동성당과 남영동 대공분실로 더 잘 알려진 서울 용산구 갈월동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수사단 건물. 6월 항쟁의 진원지를 꼽으라면 이 두 장소를 빼놓을 수 없다. 명동성당은 지난 87년 6월 군부독재정권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결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聖地)가 됐다. 유신정권 시절이던 지난 76년 「민주구국선언문」사건으로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명동성당은 6월 항쟁 이후에도 굵직한 시국사건의 「단골 현장」이 되곤 했다. 89년에는 전교조가, 90년에는 전대협이 투쟁의 캠프로 이용했고 91년 5월에는 명지대생 姜慶大(강경대)군 사망사건과 관련해 재야인사들이 43일간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독재정권 기간 중에도 「공권력의 성역(聖域)」으로 시국관련 사건이나 농성과 관련한 사람들의 피난처 구실을 해온 명동성당은 지난 95년 6월 6일 성당건립 후 90여년만에 처음으로 경찰력이 투입되는 수모를 겪었다. 성당구내에서 16일째 농성중이던 한국통신노조 간부들을 연행하기 위해 경찰력이 투입된 것. 6월 항쟁 10주년을 맞은 지금도 명동성당은 여전히 「또다른 역사의 현장」을 예비하고 있다. 한편 대공분실은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현재는 간첩과 대북관련 수사를 전담하는 경찰청 보안국3과에서 사용하고 있다. 〈김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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